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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정민시” 에 대한 검색결과 14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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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46)

사전(3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榜目)』 (1745-1800) 1745(영조 21)∼1800(정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이칭별칭 회숙(會叔)| 충헌(忠獻)
  • 부환(部還)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북한산성 예하 각 창고의 관리도 총융청으로 이관되었다. 부환의 설치 시점은 자료를 통하여 파악하기 힘든데, 1794년(정조 18)의 ()의 발언에 따르면 1749년(영조 25) 절목에는 환곡 운영에 폐단이 없었으나 중간에 부환을 설치...
    관련어보환(保還), 총융청(摠戎廳), 북한산성(北漢山城)
  • 의리주인(義理主人)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우면서 정조가 의리주인으로 인정한 서명선(徐命善), 홍국영(洪國榮), ()를 들 수 있다. 정조의 경우 생부인 사도세자의 사망 이후 영조의 명에 따라서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양자가 되어 세손이 되었지만, 세손의 지위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특히 홍인한(洪麟漢...
    관련어정조(正祖)
  • 서유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제학(提學) () 등 10인과 함께 고양(高陽)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다시 부사직(副司直)의 자리에 올랐으며, 1795년에 두 번째로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했다가 그 해 진하사(進賀使)의 부사로서 북경을 다녀왔다. 1797년에는 강원도관찰사로서 간성의 인구 동태...
    이칭별칭 원례(元禮)| 봉헌(奉軒)| 효간(孝簡)
  • 명의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를 옹위한 홍국영(洪國榮)ㆍ()ㆍ서명선(徐命善)의 충절을 선양한 뒤 이 사건의 전말을 공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권1에 진명의록차(進明義錄箚)ㆍ진명의록전(進明義錄箋)ㆍ하찬집제신전교(下纂輯諸臣傳敎)ㆍ도승지홍국영소(都承旨洪國榮疏)ㆍ명의록범...

고서·고문서(115)

  • 1800년 치제문(致祭文)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용분류종교/풍속-관혼상제-제문 | 형식분류고문서-시문류-제문
  • 31227 B031227 금귤 金橘 경제산업 承政院日記 正祖 卽位年 12月 8日_006 ○濟州牧使狀啓, 進上乳柑, 以金橘代封, 惶恐待罪事。 傳于曰, 勿待罪事, 回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79436 B079436 연어 鰱魚 수산물 承政院日記 正祖 2年 7月 29日_007 ○江原監司李亨逵狀啓, 七月令宗廟薦新生鰱魚, 限內不得封進, 惶恐待罪事, 傳于曰, 勿待罪事, 回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爲判尹, 李得臣爲知春秋, 爲宗廟提調, 李秉鼎爲景慕宮提調, 朴宗京爲禮曹正郞, 沈象奎爲南學敎授, 東萊府使單徐美修。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27843 B027843 교동부 喬桐府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正祖 4年 11月 17日_023 ○有政。 吏批, 判書李福源牌不進, 參判進, 參議朴祐源進, 行都承旨蔡弘履進。 以朴天衡爲掌令, 宋樂爲掌令, 林錫喆爲校理, 李顯永爲宗簿正, 鄭麟煥爲司僕主簿, 閔義爀爲喬桐府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신문·잡지(1)

  • 조선출판경찰월보 102호 암서선생문집 [일제강점기 제국과 식민지의 출판 검열 자료 DB 구축 | 선문대학교]
    命, 文明鬼魅容, 皇天悶雷雨, 不信有潛龍. 忠武祠用古歡韻 龜船一出站鷄林, 今日誰令此陸沈, 壁裡神刀中夜泣, 蒼天悔禍獨無心. 荒山大捷碑二首 神武三漢走卒知, 尺瑞雲垂, 腐儒對此無顔色, 今日山河意屬誰.(이하 한 수 생략) #節閣記 「壬辰之亂判書公 義兵隷金鄭二大將...
    대표표제어조선출판경찰월보 102호 암서선생문집 | 출판물명암서선생문집(巖捿先生文集)

주제어사전(2)

  • /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5∼1800). 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함경도관찰사·장용위대장·돈령부판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홍국영과 함께 발탁되어 요직을 지냈으나 항상 분수를 지켰다. 순조가 즉위하자 사리사욕을 도모한 죄로 삭탈관직되었다. 사후 복관되었다.

  • 합강정선유가 / 合江亭船遊歌 [문학/고전시가]

    1792년(정조 16)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가사. 전라북도 순창과 남원 사이로 흐르는 적성강(赤城江) 부근의 합강정에서 전라감사 ()를 비롯한 여러 고을 관장(官長)들이 모여 호화로운 뱃놀이를 하는 광경을 보고 노래한 작품이다. 「합강정가」의 병서(並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