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전체] “저적창” 에 대한 검색결과 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연구성과물(6)

사전(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고려시대 대제(大祭)에 쓸 제물을 관장하던 관부. [내용] 목종 때 사농경(司農卿)이 있었는데, 뒤에 이를 폐지하고 충선왕 때에 이르러 전농시(典農寺)를 두었으나 곧 이라 하였다. 1356년(공민왕 5) 다시 사농시를 두고 직제를
  • 무농염철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자성(粢盛 : 국가의 큰 제사에 쓰일 곡식)을 조달하는 것이었으므로, 각 지방에 파견되어 이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농사는 그 뒤 곧 ()으로 바뀌었는데, 무농염철사도 이와 함께 폐지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 전농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고려 말기에 국가의 대제(大祭)에 쓸 곡식을 관장하던 관서. [내용] 목종 때 사농경(司農卿)이 있었다가 뒤에 폐지되고, 충선왕 때 전농사(典農司)가 두어진 이후 ()ㆍ사농시(司農寺)를 거쳐 1362년(공민왕 11)에 개칭된
  • 사농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농사(典農司)가 설치되었으며, 이것이 곧 ()으로 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사농시(司農寺)가 되었다. 이 때 관속(官屬)으로는 판사(判事: 정3품)ㆍ경(卿: 종3품)ㆍ소경(少卿: 종4품)ㆍ승(丞: 종5품)ㆍ주부(主簿: 종6품)ㆍ직장(直長...

고서·고문서(2)

  • 意, 有足以泣鬼神而感豚魚, 則伊時大臣之以此後, 若有復提此事者, 乃是亂逆, 質言於章奏者, 甫及周歲, 乃反首犯, 此千古所無之世變也。 其眼無君父之心, 路人所知, 雖以聖批辭旨及封還不頒下, 見之, 疏語之絶悖窮凶, 可推而知。 觀此頭勢, 其必欲復售脅持之計, 以爲者, 明若觀火,...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沬飮請討, 亦旣多日, 而未蒙兪音, 及登前席, 天聽愈邈, 此皆臣等不忠無狀之罪, 而亦不能無憾於天地之大, 合啓論列之極惡大憝, 論其罪犯, 孰非可誅? 而如達淳之犯上不道, 煥之之賊藪窩窟, 瀅修之倀鬼, 尤是其中之窮凶絶慝者, 而尙此玩愒, 終不用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전라남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3)

  • /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대제에 쓸 제물을 관장하던 관부. 목종 때 사농경(司農卿)이 있었는데, 뒤에 이를 폐지하고 충선왕 때에 이르러 전농시(典農寺)를 두었으나 곧 이라 하였다. 1356년(공민왕 5) 다시 사농시를 두고 직제를 개정하였다. 1362년 전농시로, 1369년

  • 전농시 / 典農寺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말기에 국가의 대제에 쓸 곡식을 관장하던 관서 목종 때 사농경이 있었다가 뒤에 폐지되고, 충선왕 때 전농사가 두어진 이후 ·사농시를 거쳐 1362년(공민왕 11)에 개칭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판사·정·부정·승·주부 등이 있었다. 1369년에 사농시로 고쳐지

  • 무농염철사 / 務農鹽鐵使 [정치·법제/법제·행정]

    이는 일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농사는 그 뒤 곧 으로 바뀌었는데, 무농염철사도 이와 함께 폐지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