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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인엽” 에 대한 검색결과 241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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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39)

사전(28)

  • 회와연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의 경연일기. [내용] 3권 3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의 「주강(晝講)」에서는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하면서 요‧순(堯舜)과 걸‧주(桀紂)의 대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656(효종 7)∼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내용]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장(季章), 호는 회와(晦窩). 대건(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시발(時發)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경억(慶億)이며, 어머니는 윤원지(尹...
    이칭별칭 계장(季章)| 회와(晦窩)
  • 이석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운원(運元), 호는 남록(南麓). 경억(慶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인엽(寅燁)이고, 아버지는 하곤(夏坤)이며, 어머니는 송상기(宋相琦)의 딸이다. 아...
    이칭별칭 운원(運元)| 남록(南麓)
  • 세검 [옛 편지 낱말사전 | 한림대학교]
    작황이 좋지 않음. 흉년. 示意謹悉 値此歲儉 經始巨役 如有請起之擧 豈無顧助之道乎, (), 21(禮)-282
    분야문화‧생활 | 유형문헌
  • 향왕중 [옛 편지 낱말사전 | 한림대학교]
    궁금하던 차에. 省式 向往中 伏承問札 仍審秋抄政履萬福 昻慰區區, (), 21(禮)-282
    분야문화‧생활 | 유형문헌

고서·고문서(211)

  • 76539 B076539 동래 東萊 정치행정 肅宗實錄 二十年(1694) 七月 숙종실록_12007026_002 ○以李東郁爲承旨, 朴泰尙爲右參贊, 申琓爲禮曹判書, 爲校理, 徐宗泰爲大司成, 李喜龍爲東萊府使。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8919 B018919 검모포 黔毛浦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肅宗 18年 3月 13日_011 ○同日引見時, 吏曹判書吳始復所啓, 前大司諫李玄紀上疏, 待全羅左右道御史入來後回啓事, 頃已陳達蒙允矣。 今則右道御史, 亦已入來, 所當覆啓以入, 而繡衣廉問, 事體自別, 自該曹論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8970 B018970 검모포 黔毛浦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肅宗 18年 3月 13日_011 ○同日引見時, 吏曹判書吳始復所啓, 前大司諫李玄紀上疏, 待全羅左右道御史入來後回啓事, 頃已陳達蒙允矣。 今則右道御史, 亦已入來, 所當覆啓以入, 而繡衣廉問, 事體自別, 自該曹論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榻前定奪 濡曰, 江華留守, 以身病及求山事, 陳情上疏, 有令廟堂稟處之命矣。 寅燁病勢之輕重, 未知其如何, 而求山之事, 私情則雖切, 非如遷葬日期之已定, 不可以此, 輕遞重任。 且江都凡事之可以變通者, 似未及收殺, 尤難準許, 他大臣之意, 亦如此, 故敢達。 上曰, 姑勿許遞...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9067 B009067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33年 5月 28日_017 ○晝講入侍時, 所啓, 臣將下往江都, 江都卽保障之地, 與他處有異, 將校輩必懸望於試才, 當此農節, 若聚會以待, 則何以爲之乎? 上曰, 將校輩聚會, 則試才, 可也。 備局謄錄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2)

  • / [종교·철학/유학]

    1656(효종 7)∼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시발, 아버지는 경억, 어머니는 윤원지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 회와시고 / 晦窩詩稿 [종교·철학/유학]

    의 시집. 불분권 1책. <古 3447-42> 필사본으로 미정고본으로 추정된다. 수정을 위해 이곳저곳에 교정 사항을 가필한 흔적이 보인다. <회와시고>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묘도문자가 수록된 부록 역시 부재한 채 전체가 시로만 구성된 시고로서 권말 일부가 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