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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의윤” 에 대한 검색결과 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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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4)

사전(7)

  • 무첨당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설] 조선 중기의 학자 ()의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방손 종상(鍾祥)의 편집을 거쳐, 고종연간에 후손들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휘재(李彙載)의 서문과 권말에 종상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8수, 부 2편, 논(論) 1편, 잠 2편,
  • 윤석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665(현종 6)∼1725(영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내용]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길(仲吉), 호는 둔정(鈍靜)ㆍ만회(晩晦). 영(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선(止善)이고, 아버지는 부윤 이(理)이며, 어머니는 ...
    이칭별칭 중길(仲吉)| 둔정(鈍靜), 만회(晩晦)
  • 윤양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673(현종 14)∼1751(영조 27). 조선 후기의 문신. [내용]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계형(季亨), 호는 회와(晦窩). 영(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선(止善)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이(理)이며, 어머니는 (...
    이칭별칭 계형(季亨)| 회와(晦窩)| 익헌(翼獻)|비주서(飛注書)
  • 사발재도(事發在逃)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賤逃亡 傳曰 此公事 予意亦以爲未便 然律文曰 事發在逃 衆證明白 卽同獄成云 禁府如此爲公事入啓 而予意亦謂其有前例 也 然則當更相考而發落也[『중종실록』 23년 11월 9일]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관련어범죄사발재도조(犯罪事發在逃條), 속전(贖錢)
  • 윤리(尹理)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씨(興陽李氏) : ()의 딸 [비문] →(자녀)4남 2녀단양 이씨(丹陽李氏) : ()의 딸 [방목] →(자녀)4남 2녀 (1자)윤창래(尹昌來) (2자)윤석래(尹錫來) (3자)윤익래(尹益來) (4자)윤양래(尹陽來) (1녀)강태상(姜泰相)의 처...

고서·고문서(26)

  • 무진년 () 간찰(簡札)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서울역사박물관
  • 38467 B038467 다대포 多大浦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正祖 卽位年 12月 15日_045 捧不少, 而民情甚急云, 南漢新還, 特爲停捧事, 分付。 仍命國榮先退。 命有防書傳敎曰, 童蒙敎官殿最他敎官, 則皆以留心不怠, 無闕等語爲目, 而至於, 則除拜旣久, 而以佇觀訓效爲...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條, 判下, 李枝恒, 依他例直赴殿試乎? 惶恐敢啓。 答曰, 依他例直赴殿試。 以上備局謄錄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條, 判下, 李枝恒, 依他例直赴殿試乎? 惶恐敢啓。 答曰, 依他例直赴殿試。 以上備局謄錄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道光 4년에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01 [조선시대 영남지역 종가생활문화자료 집성 및 DB화 | 경북대학교]
    에게 45냥을 받고 팔았다. 증인은 幼學 과 李以孫이다.
    자료구분고문서 | 현소장처이철응(종손) | 자료문의경북대학교 우인수 교수

기초학문(1)

  • 임신 중 정신악물 사용이 조산 및 신생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이의윤, 게재일 : 2014
    65184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대한정신약물학회 2014 임신 중 정신악물 사용이 조산 및 신생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
    유형논문 | 게재일2014

주제어사전(1)

  • / [종교·철학/유학]

    1564년(명종 19)∼1597년(선조 30). 조부는 이언적, 부친은 이응인이다. 일찍이 한강 정구의 문인이 되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독서와 효행을 독실히 행하다가 34세에 요절하였다. 사림에서 그를 추도하여 사원을 세웠고 저술로『무첨당선생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