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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광좌” 에 대한 검색결과 3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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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25)

사전(12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國朝人物志 雲谷實記 黨議通略 (1674-1740) 1674(현종 15)∼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글씨는 ≪근묵≫에서.
    이칭별칭 상보(尙輔)| 운곡(雲谷)| 문충(文忠)
  • 민형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하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26년 설서(說書)를 거쳐, 검열(檢閱)‧봉교(奉敎)‧겸설서‧한림(翰林) 등을 역임하였다. 1729년 정언(正言) 및 별겸춘추로서 정미환국 이후 노론의 거두인 아버지가 밀려나고 소론이던 ()가...
  • 이진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어머니는 정이화(鄭以和)의 딸이다. [내용] 1696년(숙종 22)에 생원이 되고, 1711년(숙종 37)에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持平)ㆍ정언(正言)을 거쳐 1725년(영조 1) 대사성으로 소론(少論)인 ()의 신원을...
    이칭별칭 구숙(久叔)| 도운(陶雲), 퇴운(退雲)
  • 박태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폐하고자 하였다. 급제한 뒤 4년 만에 병으로 죽어 벼슬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그쳤다. 평소 언론이 준엄하면서 발라 당파에 휩쓸리지 않아 ()‧최창대(崔昌大) 등은 그를 선배로 존경하였다. [저술활동] 저서로는『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이칭별칭 교백(喬佰)
  • 신치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딸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 검열ㆍ부수찬(副修撰)을 거쳐, 수찬 때에 북도(北道)에 다녀와서 과죄(科罪)를 적발하였으나 북도인 이재형(李載亨) 등 15인을 천거한 ()의 흉여당(...
    이칭별칭 유언(幼言)

고서·고문서(198)

  • 72007 B072007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41年 6月 21日_013 ○吏批, 以韓世良爲東萊府使, 爲平安監司。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0714 B040714 대구어 大口魚 경제산업 承政院日記 肅宗 39年 10月 13日_007 ○以咸鏡監司狀啓, 十月令薦新生文魚·生大口魚, 不得封進, 惶恐待罪事, 傳于柳泰明曰, 勿待罪事, 回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0742 B040742 대구어 大口魚 경제산업 承政院日記 肅宗 39年 10月 13日_007 ○以咸鏡監司狀啓, 十月令薦新生文魚·生大口魚, 不得封進, 惶恐待罪事, 傳于柳泰明曰, 勿待罪事, 回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猶可以參酌, 而卽今則斷不可從矣。 曰, 小臣此言, 非出於市恩之意矣。 雖只三人, 豈無首從乎? 實狀主張, 雖未知爲誰, 公家事例, 從文券施行, 首題之人, 宜當爲頭之責。 且因一事, 三人島配過矣。 上曰, 尹得徵, 仍配, 疏下二人, 減等, 竝遠竄。 曰, 旣已減等付處, 何...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可以參酌, 而卽今則斷不可從矣。 曰, 小臣此言, 非出於市恩之意矣。 雖只三人, 豈無首從乎? 實狀主張, 雖未知爲誰, 公家事例, 從文券施行, 首題之人, 宜當爲頭之責。 且因一事, 三人島配過矣。 上曰, 尹得徵, 仍配, 疏下二人, 減等, 竝遠竄。 曰, 旣已減等付處, 何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신문·잡지(1)

  • 政界問荅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사신 씨 후손이라고 그런 놀난만고 잇다가 이지경 들고 그건다 무삼소리야 그랴 씨 당년에 모든 일리 잘되앗스면그손은 병신이라도 쳔 벼살터인가 그시에 잘못얏스면 그자손이 웅걸이라도 그 말만고 영위발일넨가 그리기 말리지 리복영이 못기건 가지△셔...
    게재일1906년 11월 15일 | 기사분류기타

주제어사전(10)

  • / [종교·철학/유학]

    1674(현종 15)∼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항복 현손. 성남 증손, 할아버지는 시현이다. 아버지는 세구, 어머니는 박장원의 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부수찬, 사헌부헌납, 전라도관찰사, 이조참의, 함경도관찰사, 호조

  • 조명정 / 趙明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9∼1779). 노론 강경파로 소론과 정쟁을 벌였는데 소론 를 공격하여 영조의 노여움을 샀으며, 민백상을 두둔하다가 유배되었다. 1754년 경기좌도심휼사로 세금을 줄여줄 것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 김상석 / 金相奭 [종교·철학/유학]

    1690년(숙종 16)∼1765년(영조41). 조선 후기의 문신.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지평 김홍석이고, 아버지는 김호이며, 어머니는 윤세익의 딸이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집권하자 간관이 되어 소론의 ·조태억·이삼·심단 등을

  • 민응수 / 閔應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4∼1750) 광훈 증손, 할아버지는 시중, 아버지는 진주, 어머니는 정상징의 딸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호서안무사의 종사관으로서 엄정하게 군기를 잡는 공을 세워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후에 우의정에 이르렀다. 후에 ·조태억의 관작

  • 안세갑 / 安世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3∼1763). 1725년(영조 1) 영조 즉위로 노론이 세력을 잡자, 신임사화 때 노론을 배척한 소론 ·조태억 등이 아직 조정에 있음을 보고 이를 논척하다가 투옥되었으며 곧 풀려나왔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자 선전관으로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