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유월장”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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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4)
사전(17)
- 유월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죽은 달을 넘겨서 다음달에 치르는 장사(葬事). [내용] 전통사회의 유가(儒家)에서 행하여졌다. 갑오경장 이후 7일장이나 9일장을 치르도록 촉구되었으나 사대부 집안에서는 계속 시행되었으며, 최근에도 그 실시사례가 있다. 유월장은
- 명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가례(家禮)』 『사계집(沙溪集)』 『사례변람(四禮便覽)』 명정 / 유월장 장사지낼 때 죽은 사람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이칭별칭명기(銘旗)
- 부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짜, 호상 이름, 받는 자의 이름을 쓴다. 오늘날의 관행은 예서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옛날에는 유월장(踰月葬)을 하였으므로 부고에 장례의 날짜를 기록하지 않고 계고(啓告)라 하여 따로 통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3일장 또는 5일장을 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위의...
- 반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便覽)』 『사계집(沙溪集)』 『대산집(大山集)』 제수 운반(혼백) / 유월장 장사를 지낸 뒤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는 곡.
- 문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초‧술‧과일 등을 영위에 바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의 문상과 다른 점이다. 『상례비요(喪禮備要)』 『사례편람(四禮便覽)』 『가례(家禮)』 조문 / 유월장 상...
고서·고문서(7)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輕重, 且怯多士之蹂躪致殞, 彷徨場外之際, 混被越圍之目爲言。 取考配案, 則必夏以監試初試時, 踰越場圍罪, 戊申九月, 水軍定配於東萊府矣。 當初罪名, 與其上言辭意, 旣甚相左, 則不可遽議疎釋, 置之, 何如? 傳曰, 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거제현령(巨濟縣令)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8262 B018262 거제현령 巨濟縣令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20年 11月 27日_011 中, 爲人所逐, 踰越墻垣之說, 萬不近似。 伊時私第門墻之高截, 扃鐍之嚴固, 決非行商被逐者所可容易踰入, 則其爲罪犯, 與踰越宮墻者, 小無異同, 而按治之際, 只憑各人眩亂之辭, 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거제현령(巨濟縣令)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8273 B018273 거제현령 巨濟縣令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20年 11月 27日_011 中, 爲人所逐, 踰越墻垣之說, 萬不近似。 伊時私第門墻之高截, 扃鐍之嚴固, 決非行商被逐者所可容易踰入, 則其爲罪犯, 與踰越宮墻者, 小無異同, 而按治之際, 只憑各人眩亂之辭, 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귀도(貴島)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於旬月之中, 尤爲駭愕, 耳不忍聞。 一則數十成群, 乘夜踰越墻限, 剌殺官兵三人, 一則潛乘昏暗, 成群騎使中船, 掠害邊官因事往來之船, 於薺浦相近之處。 殺人者死, 寇亂必誅, 古今天下大法。 法之所犯, 無間國之彼此。 苟或容姦, 不致於辟, 則死者含冤於冥冥之中, 天地鬼神, 必加殃禍於弛...출처전거中宗實錄 | 지역분류미상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鄭孝子傳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不言良久而後,語之曰:“死生如晝夜,君子勿悲也。兒知今年有此事,其日月所不知也。今脈已亂,非藥可救。兒有二雛,願以慰心。” 越三日而絶,年纔三十。旣踰月葬于節度營之東七里甑峯之下負酉之原,乃孝子舊所自占,手植松柞,欲以葬其親者也。父曰始攝,臨其壙而哭之曰:“汝一瞑而我有三失,失子焉,失友焉,失師焉。...권차명文集 卷十七 | 문체傳記類|其他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주제어사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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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장 / 踰月葬 [종교·철학/민간신앙]
죽은 달을 넘겨서 치르는 장례식. 중국의 한대와 당대에는 대부는 3월장을, 사는 유월장을 지내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 영향을 받고 고려 말과 조선 초기부터 성행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선비들의 경우에도 유월장보다 3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