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예문관”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850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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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706)
사전(1,444)
- 예문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문한서(文翰署)로 되었고, 1298년에 다시 사림원(詞林院)으로 고쳤다가 1308년에 사관(史館 : 春秋館)을 합쳐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이라 하였으며, 1325년(충숙왕 12)에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이 예문관은 135...
- 예문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말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 예문춘추관을 두어 교명(敎命)과 국사(國史) 등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1401년(태종 1)에 다시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그 뒤 1456년(세조 2) 세조에 의해 집현전이 혁파된 뒤, 집현전에서 수행하던 인재 양성과...
- 예문관 [한국학영문용어용례정보 구축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 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대신하여 짓는 것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정의조선시대 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대신하여 짓는 것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광부표기Yemun-gwan | MR표기Yemun’gwan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용어 용례 연구팀(연구책임자 : 한형조 교수)
- 藝文館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TD_G1_D_0144 藝文館 국제관계 禁中, 翰林院, 詞命 高麗 麗史 D_15_05_40 대동운부군옥 15권 5장 40절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5권 5장 40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검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9품 관직. [내용] 조선 태조 1년(1392)에 고려관제를 따라 예문춘추관을 설치하면서, 정9품인 직관(直館)으로 개칭하였다가 1401년(태종 1) 7월에 춘추관‧예문관을 분리하면서 다시 검열로 고치고 예문관에 속하...이칭별칭한림
고서·고문서(262)
- 1616년 예문관(藝文館) 개명첩(改名帖)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내용분류정치/행정-명령-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첩 | 현소장처진주 운문 진양하씨
- 1800년 예문관(藝文館) 개명첩(改名帖)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내용분류정치/행정-명령-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첩 | 현소장처제천 한수 연안이씨
- 1520년 김연(金緣)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520년(중종15) 이조 에서 김연 을 통사랑 행예문관검열 겸춘추관기사관 으로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사랑은 정8품의 품계이다. 예문관은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았으며, 춘추관은 역사기록을 맡은 기관이다.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1407년 정전(鄭悛) 조사첩(朝謝牒)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707년 1월 18일에 태종의 명령으로 직예문관으로 임명되는 정전을 조사를 마치고 관문을 보냈기에 고첩을 보내기에 합당하다는 문서이다.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조사첩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1407년 정전(鄭悛) 조사첩(朝謝牒) [장서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707년 1월 18일에 태종의 명령으로 직예문관으로 임명되는 정전을 조사를 마치고 관문을 보냈기에 고첩을 보내기에 합당하다는 문서이다.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조사첩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주제어사전(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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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관 / 藝文館 [정치·법제/법제·행정]
9품) 4인으로 구성. 그 중 제학 이상은 겸관이며 직제학은 도승지가 겸하고 응교는 홍문관의 관원이 겸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예문관의 전임관은 봉교 이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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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 檢閱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9품 관직. 1392년(태조 1)에 고려관제를 따라 예문춘추관을 설치하면서, 정9품인 직관으로 개칭하였다가 1401년(태종 1) 7월에 춘추관·예문관을 분리하면서 다시 검열로 고치고 예문관에 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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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각당상 / 館閣堂上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홍문관·예문관·규장각 소속의 당상관. 홍문관의 대제학·제학·부제학, 예문관의 대제학·제학·직제학, 규장각의 제학·직제학을 말한다. 홍문관·예문관은 보통 한 사람이 겸직하여 양관대제학이라 칭하였으며, 예문관의 직제학은 도승지가 당연직으로 겸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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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제학 / 直提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시대 홍문관·예문관·규장각의 정3품 당상관직. 예문관의 직제학은 도승지가 겸하였다. 1392년(태조 1) 7월의 태조신반관제에 따르면 예문춘추관에 정2품의 대학사 1인, 종2품의 학사 2인을 두었는데, 1401년(태종 1) 7월의 관제 개혁 때 예문춘추관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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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교 / 奉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7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예문관의 정8품 대교(待敎) 2인과 정9품 검열(檢閱) 4인과 더불어 ‘8한림(八翰林)’이라고 하여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는 사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