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어죽”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81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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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77)
사전(123)
- 어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많이 쓰인다. 어죽에 쓰이는 생선 중 도미‧붕어 등이 특미로 일컬어진다. 특히, 제주도의 옥돔죽이 명물이다. 어죽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다음 조리로 일어서 건져 놓는다. 한편 붕어‧도미‧옥돔 등의 생선에 물을 넉넉하게 붓고...
- 두춘화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두견화’를 의인화한 것이다. 백화국의 총융사이나, 병을 얻어죽는다.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야율흡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북방의 선봉장으로, 두충이 엄답을 공격하려 하자 맞서 싸워 칼로 베어죽인다. 그러나 매수방과 싸우다가 칼에 찔려 죽는다.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기표 [옛 편지 낱말사전 | 한림대학교]굶어죽은 사람. 표(莩)는 표(.)와 같음. 生僅保病拙 而遍廻列邑 飢莩溢目 賑救無策 憂惱關心 食息靡寧, 이진(李袗), 21(義)-310분야문화‧생활 | 유형문헌
- 윤숙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호란 때 통제사로. 전라감사 이시방의 지시에 따라 본진을 버리고 원주부근 산골짜기에 숨어 적병을 만나지 않는다. 이 죄로 영해로 귀양 가서 그 곳에서 병들어죽는다.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고서·고문서(135)
- "굶어죽느니 南(남)쪽 택했다" [분단 70년 DMZ 남북 충돌(군사)사례 DB구축: 1945~2015 | 동국대학교]역사 문헌 현대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자료학(일반류) 동국대학교 김용현 "굶어죽느니 南(남)쪽 택했다" 대한민국(남한) 동아일보 기타(신문) 남한의 주요 일간지인 『동아일보』: 1920년 4월 1일 창간 북한, 귀순 1...대표표제어"굶어죽느니 南(남)쪽 택했다" | 저작권자동아일보 | 자료구분기타(신문) | 키워드북한, 귀순
- "굶어죽느니 잘사는 南韓(남한)으로" [분단 70년 DMZ 남북 충돌(군사)사례 DB구축: 1945~2015 | 동국대학교]역사 문헌 현대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자료학(일반류) 동국대학교 김용현 "굶어죽느니 잘사는 南韓(남한)으로" 대한민국(남한) 국방홍보원 기타(신문)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에서 발행하는 『국방일보』: 1964년 11월 1399일...대표표제어"굶어죽느니 잘사는 南韓(남한)으로" | 저작권자국방홍보원 | 자료구분기타(신문) | 키워드북한, 귀순
- 中共餓死災民(공산당이 사람을 굶어죽게 한다) [분단 70년 DMZ 남북 충돌(군사)사례 DB구축: 1945~2015 | 동국대학교]역사 문헌 현대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자료학(일반류) 동국대학교 김용현 中共餓死災民(공산당이 사람을 굶어죽게 한다) 대한민국(남북한) DMZ박물관 문헌자료 삐라는 남북한 심리전의 한 수단으로 항공기나 기타 수단에 의해 적지에대표표제어中共餓死災民(공산당이 사람을 굶어죽게 한다) | 저작권자DMZ박물관 | 자료구분문헌자료 | 키워드餓死(굶어죽기)
- 船員(선원)과 一問一答(일문일답) "아들굶어죽었다"열흘동안 會見(회견)연습 [분단 70년 DMZ 남북 충돌(군사)사례 DB구축: 1945~2015 | 동국대학교]역사 문헌 현대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자료학(일반류) 동국대학교 김용현 船員(선원)과 一問一答(일문일답) "아들굶어죽었다"열흘동안 會見(회견)연습 대한민국(남한) 경향신문사(남한) 기타(신문) 남한의 주요 일간지인 『경향신문』...대표표제어船員(선원)과 一問一答(일문일답) "아들굶어죽었다"열흘동안 會見(회견)연습 | 저작권자경향신문사(남한) | 자료구분기타(신문) | 키워드북괴, 납북, 납치, 귀환
- 黃長燁(황장엽)—金德弘(김덕홍) 진술내용 北(북)주민"굶어죽느니 차라리 전쟁을" [분단 70년 DMZ 남북 충돌(군사)사례 DB구축: 1945~2015 | 동국대학교]역사 문헌 현대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자료학(일반류) 동국대학교 김용현 黃長燁(황장엽)—金德弘(김덕홍) 진술내용 北(북)주민"굶어죽느니 차라리 전쟁을" 대한민국(남한) 동아일보 기타(신문) 남한의 주요 일간지인 『동아일보』:대표표제어黃長燁(황장엽)—金德弘(김덕홍) 진술내용 北(북)주민"굶어죽느니 차라리 전쟁을" | 저작권자동아일보 | 자료구분기타(신문) | 키워드황장엽, 망명, 북한
구술자료(37)
- 굶어죽은 열녀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열녀에 대한 전설은 없느냐고 물으니, 아래의 내용을 구연하였다.조사일시2011.04.24 | 조사장소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 381-2 | 제보자박병태
- 굶어죽은 지리박사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구연상황 없음*조사일시1979-12-15 | 조사장소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 제보자함종근
- 굶어죽은 성부자 며느리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구연상황 없음*조사일시1980-08-06 | 조사장소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 제보자이선자
- 남편을 안고 얼어죽은 열녀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제보자는 계속하여 팔금도(八禽島) 한 장사형제의 이야기를 몸짓을 곁들여 흥미있게 구연했다. 이 이야기는 육십여년 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조사일시1984-07-09 | 조사장소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 제보자이강철
- 굶어죽은 거지 시체를 보고 시를 지은 김삿갓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조사자가 제보자에게 사랑방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청하자, 제보자는 사랑방에서 의병, 김삿갓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답하였다. 그 러자 조사자가 김삿갓 시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자 제보자가 자세히 구연했다.조사일시2009. 2. 2(월) | 조사장소가평군 가평읍 하색 1리 346번지(제보자 자택) | 제보자신영범(慎英範)
신문·잡지(76)
- -(魚竹) [한말~식민지 시기 상공회의소 관련자료 조사 분석 및 DB화 | 서강대학교]경제·산업 사건 근대 -(魚竹) 대구 - 魚竹 東城町 2丁目 - - 요리점 - - - 最近 大邱要覽: 大邱商工人名錄, 1920년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토대연구지원 서강대학교 최기영대표표제어-(魚竹) | 지역대구 | 품목- | 영업종목요리점 | 자료출처最近 大邱要覽: 大邱商工人名錄, 1920년
- 슈일에 일긔가 심히 차셔 강시가 더...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슈일에 일긔가 심히 차셔 강시가 더러난다더니 종각 근쳐에셔 걸인 삼명이 얼어죽고 감옥셔 죄슈가 슈일로 십칠명이 동 엿다고 어느 신문에 말엿더라게재일1900년 1월 18일 | 기사분류잡보
- 출판경찰보 108호 우주풍 [일제강점기 제국과 식민지의 출판 검열 자료 DB 구축 | 선문대학교]만주국민에게 학정(虐政)을 하고 있는 것처럼 곡설(曲說)비방하므로 금지함. 민족국가사상에 속하는 서적도 모두 소각되고 말았다. 그리고 늑대개(셰퍼드)에게 물어죽을 것을 두려워해서 굳이 보존하려고 하는 이도 없다. (현재 사형(死刑)에는 총살을 쓰지 않고 일본병영의...대표표제어출판경찰보 108호 우주풍 | 출판물명우주풍(宇宙風) 31기
- 조국과인민을위하여_1951_0115_02 [한국전쟁기 미군노획문서철 중 북한신문자료의 수집.해제.데이터베이스 구축 | 이화여자대학교]위원장을 하였다 하여 구타당하여 즉사하였으며 매일같이 얼어죽고 굶어죽고 마자죽은 사람이 56□…□고 한다.대표표제어조국과인민을위하여_1951_0115_02 | 책임주필홍수일
- 조선출판경찰월보 007호 김영팔 싸흠 [일제강점기 제국과 식민지의 출판 검열 자료 DB 구축 | 선문대학교])은 생활난 때문에 악심이 생겨, 술집의 금고 안에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아! 안 돼! 굶어죽을 때까지 견디자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처자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끝내 저질러버렸다.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그는 생활의 흑수에 큰 힘이...대표표제어조선출판경찰월보 007호 김영팔 싸흠 | 출판물명싸흠(喧嘩)
기타자료(6)
- 판진겸속이 발해로부터 올 때 사람을 바다에 빠트린 일로 옥에 가두다. [동아시아 ‘교류’ 관련 한국고대사 기초자료 연구 : 문서, 사람, 물품 | 고려대학교]헤매었고, 타사(柂師)와 뱃사공이 파도 때문에 수몰되었다. 이 때 겸속이 의론하여 말하기를 “이방의 부녀가 지금 배 위에 있다. 또한 이 우바새도 일반인과 다르다. 한 끼에 몇 개의 낱알을 먹고 며칠이 지다도 굶어죽지 않는다. 폭풍으로 인한 표류의 재앙은 이 때문이다....대표표제어판진겸속이 발해로부터 올 때 사람을 바다에 빠트린 일로 옥에 가두다. | 주제분류교역물품 | 연대763년(癸卯/신라 경덕왕 22/발해 문왕 大興 27/唐 肅宗 寶應 2, 代宗 廣德 1/日本 淳仁天皇 天平寶字 7)
- 이타후리노 카마쓰카(板振鎌束)가 발해로부터 올 때, 사람을 바다에 빠트린 일로 옥에 가두다. [동아시아 ‘교류’ 관련 한국고대사 기초자료 연구 : 문서, 사람, 물품 | 고려대학교]문에 수몰되었다. 이 때 카마쓰카가 의론하여 말하기를 “이방의 부녀가 지금 배 위에 있다. 또한 이 우파색도 일반인과 다르다. 한 끼에 몇 개의 낱알을 먹고 며칠이 지다도 굶어죽지 않는다. 폭풍으로 인한 표류의 재앙은 이 때문이다. 이내 사공(水手)으로 하여금 내궁의...대표표제어이타후리노 카마쓰카(板振鎌束)가 발해로부터 올 때, 사람을 바다에 빠트린 일로 옥에 가두다. | 주제분류교류담당 | 연대763년(癸卯/신라 경덕왕 22/발해 문왕 27 大興 27/唐 寶應2·廣德1/日本 天平寶字 7)
- 32. 남부지역의 반란 [한불외교자료의 탈초,번역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수탈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연이은 가뭄으로 이미 큰 피해를 입었고, 가을의 흉작을 두려워합니다. 상황이 그렇게 어려운 데다, 주민들은 심한 착취까지 당해서 봉기를 하든 아니면 굶어죽든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반도들 무리는 약 400명입니다. 그들...집필자V. 콜랭 드 플랑시, 대한제국 주재 프랑스 공사 | 작성연도1899년 | 작성월일6월 8일 | 발신자V. 콜랭 드 플랑시, 대한제국 주재 프랑스 공사 | 수신자델카세, 프랑스 외무부 장관
- 선천군 화폐개혁 경과 총괄보고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 동국대학교]것이라고 저 정승근은 천명하는 바입니다.” 2) 심천면의 박동주(Пак Тон Чу)라는 공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아무리 내주더라도 화폐를 바꾸고 나면 우리는 쌀 한말 살 돈밖에 받지 못해 나중에는 굶어죽을 것입니다.” 3) 군산면 농민 정인혁(Чен Ин Хе...키워드선천군, 화폐개혁, 화폐교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가격 현황 | 대표주제어북조선 화폐개혁 | 발신자선천군 경무사령관 마카로프 | 수신자평안북도 정치고문 그라포프
-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보낸 書 [동아시아 ‘교류’ 관련 한국고대사 기초자료 연구 : 문서, 사람, 물품 | 고려대학교]였고, 鄒祖를 邊城에서 사로잡자 나자빠진 시체는 들판을 덮었습니다. 燕山郡의 밭 두덕에서는 吉奐을 軍陣 앞에서 베어죽였고, 馬利城의 변두리에서는 隨唔를 깃발 아래서 죽였습니다. 任存城을 뺏던 날에는 邢積 등의 수백 명이 몸을 버렸고, 靑州를 깨뜨릴 적에는 直心 등 4,...대표표제어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보낸 書 | 주제분류외교문서
주제어사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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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죽 / 魚粥 [생활/식생활]
생선을 푹 고아서 발라낸 살과 체에 밭친 국물에 쌀을 넣어 끓인 죽. 어장이 있는 해안지역에서 갓 잡은 신선한 생선으로 만든 것이 특히 명물로 칭송된다. 별미음식일 뿐만 아니라 영양가 높은 반유동식이어서 노인의 보양음식으로도 많이 쓰인다. 어죽에 쓰이는 생선 중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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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곡 / 滄浪曲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조선시대 가사.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61행이다. 부귀공명을 버리고 일간어죽(一竿漁竹)을 벗삼아 창랑(滄浪)에서 살겠다는, 어부가(漁父歌) 계열의 노래다. “이몸이 한가하여/산수간에 소요하니/부귀공명 듯없기는/연하고질(煙霞痼疾) 병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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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할고설화 / 孝子割股說話 [문학/구비문학]
효자가 자신의 살을 베어 굶어죽게 된 부모를 살렸다는 내용의 설화. 일반담(一般譚) 중 교훈담에 속한다. 『삼국유사』 효선(孝善) 제9 향득사지할고공친 경덕왕대조(向得舍知割股供親 景德王代條)에 실려 있고, 『삼국사기』 열전 제8 향덕조(向德條)에도 나타난다. 웅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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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낭자전 / 索囊子傳 [문학/한문학]
가리켜 ‘삭낭자의 바둑 두는 법’이라 하였다. 새나 짐승이 얼어죽을 만큼 추운 날에도 그는 발가벗은 채 지냈으며, 누가 옷을 주더라도 받지 않았다. 원두표(元斗杓)가 견성윤(甄城尹)이 되었을 때 그를 불러 대접을 두터이하였으나 얼마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수십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