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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아사달” 에 대한 검색결과 9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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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95)

사전(5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고조선의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도읍을 정하였다는 전설적인 지명. [내용]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은 하나의 전설적인 지명으로 평양과 구월산(九月山)이라는 두 가지 설이
  • TD_C3_D_0567 지방 世傳, 初都, 移都, 化爲神, 御衣 九月山, 平壤, 白岳, 扶蘇山, 左蘇, 假闕 檀君, 高宗 勝覽, 世年歌, 麗史 D_19_03_16 대동운부군옥 19권 3장 16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9권 3장 16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근대신어 : 아르한겔스크(干)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5272 아르한겔스크 아항 干 帝宣萬第四倂呑加森及干且檢出西比利亞 이반 4세가 카잔과 아르한겔스크를 병탄하고 시베리아로 진출하였다. 俄國誌畧績稿 漢城旬報 28 博文局 1884 6...
    출전漢城旬報[博文局] | 계통분류 [과학지식] 행정지명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 TD_C6_D_0074 九月山 산림 神 檀君 D_04_05_22 대동운부군옥 4권 5장 22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4권 5장 22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TD_L14_D_2891 檀君 인물 神 武丁乙未, 商, 八年 商, 山 外紀 D_13_05_01 대동운부군옥 13권 5장 1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3권 5장 1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단행본(1)

  •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형성과 영역 | 한양대학교]
    저자 : 신용하(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출판사 : 지식산업사 | 출판일 : 2010.08.15
    분야역사 | 유형단행본
    국가의 명칭 (3) 고조선의 건국시기 (4) 고조선의 건국 제왕 단군 (5) 고조선의 첫 수도 5. 고조선의 중앙정부 조직 (1) 군주제와 제왕 단군

고서·고문서(30)

  • 39484 B039484 달산 達山 산악 東史綱目附卷下 太伯山考 _ _ ... ⁄白岳考附⁄遺事檀君初都平壤又移白岳山又云亦云白岳在白州地今白⁄川或云在開城東今白岳宮是今未詳皆未定之辭也麗史金謂磾傳引神誌仙⁄人秘詞有白牙岡之說而以西京卽平壤當之世傳神誌檀君時人出權擥應制詩...
    출처전거東史綱目附卷下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經史篇七]論史門四_三聖祠 [성호전서 정본화 사업 (II) | 청명문화재단]
    三聖祠 史稱: “檀君入山, 爲神.” “阿斯”者, 諺語九也; “達”者, 諺語月也, 今文化 九月山, 是也. 山有三聖祠祀, 桓因、桓雄、檀君三人, 春、秋降香致祭. 大抵東史, 雜採俚俗, 尤甚孟浪, 而作史者取焉, 其見識之陋, 如此.
    서명星湖僿說類選卷之九 | 저자이익(李瀷, 1681~1763) | 자료문의청명문화재단 태동고전연구소(www.chungmyung.org)
  • 39542 B039542 달산 達山 산악 高麗史 권58 志12 地理3 西海道 儒州 儒州 本高勾麗闕口高麗初改今名 顯宗九年來屬睿宗元年置監務高宗四十六年以衛社功臣成均大司成柳璥內鄕陞爲文化縣令官別號始寧[成廟所定] 有九月山[世傳山]莊莊坪[世傳檀君所都卽唐莊京之訛]三聖祠[有檀因...
    출처전거高麗史 권58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39307 B039307 달산 達山 산악 世宗實錄 十年(1428) 六月 세종실록_11006014_005 ○右議政仍令致仕柳寬上書曰:○黃海道文化縣, 是臣本鄕, 自爲幼學, 下去多年, 聞諸父老之言, 乃知事迹久矣。 九月山是縣之主山, 在檀君朝鮮時 名山, 至新羅改稱闕山, 其...
    출처전거世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司未究其實, 請立廟於(於)平壤, 臣叔父寬辨論其非, 事未施行。 臣以《世年歌》考之, 檀君初都平壤, 後都白岳, 武丁八年乙未, 入山爲神。 其歌曰: “享國一千四十八, 至今廟在。”, 則豈無所據乎? 又況高麗建廟於九月山下, 其堂宇位版猶存, 與《世年歌》合, 臣愚以爲捨此而更立...
    출처전거世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구술자료(2)

  • 부부와 무영탑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고 사양하다가 고담(古談)하나 하겠다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다. 앞의 이야기를 들어면서 생각해낸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우홍태씨가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화 16]을 마치자 이야기의 끝부분이 생각나서 다시...
    조사일시1982-05-29 | 조사장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 제보자김형숙
  • 부인이 빠져죽은 영지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제보자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토째비 이야기와 쌀나오는 구멍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토째비는 허재비와 달라서 형체가 있고, 허재비는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내용의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쌀나오는 구멍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인 것이어서 이미 조사한 이...
    조사일시1979-04-07 | 조사장소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 석계1리 | 제보자임문혁

신문·잡지(8)

  • 민세안재홍전집 : 社會進化의 諸段階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0520 1930 2 5 56 7 安在鴻 안재홍 朝鮮上古史管見( 八) 社會進化의 諸段階 四. 檀君時代(三) 신문 조선일보 4면1단 석간 논문 역사 직접자료 선집외 檀君時代 A19300205조선...
    출처형태신문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 민세안재홍전집 : 國號私議②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1711 1948 7 7 4 2 安民世 안재홍 國號私議② 太白國과 太平國 신문 한성일보 1면 3단 논단 역사 직접자료 4권 太白國 太平洋 A19480707한성01
    출처형태신문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 민세안재홍전집 : 社會進化의 諸段階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0524 1930 2 9 56 11 安在鴻 안재홍 朝鮮上古史管見( 十二) 社會進化의 諸段階 四.檀君時代(七) 신문 조선일보 4면1단 석간 논문 역사 직접자료 선집외 고을政治, A1930020...
    출처형태신문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 민세안재홍전집 : 檀君史와民族的見地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0735 1931 11 13 1 1 安在鴻(무기명) 안재홍 檀君史와民族的見地 開天節의一感想 신문 조선일보 1면1단석간 사설 역사 직접자료 4권 檀君, 開天節, 箕子朝鮮, A19311113조선01...
    출처형태신문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 민세안재홍전집 : 社會의 發展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1053 1936 2 15 1 1 安在鴻 안재홍 社會의 發展 朝鮮開國史의 側面觀 잡지 조광 4호/2권 2호 56~59쪽 논문 역사 직접자료 6권 白頭山 聖母山 平壤 檀君王儉 太白山 B1...
    출처형태잡지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주제어사전(3)

  • / [지리/인문지리]

    고조선의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도읍을 정하였다는 전설적인 지명.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은 하나의 전설적인 지명으로 평양과 구월산(九月山)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단군은 처음 평양에 도읍을 정하였

  • 구월산 / 九月山 [지리/자연지리]

    동쪽에는 오봉산(859m)이, 남쪽에는 봉(峰, 687m)·비산(飛山, 583m) 등이 있다. 옛날에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 정하였다가 이곳 구월산에 옮기고 수 천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산에는 단군에 관한 성적(聖蹟)이 곳곳에 있는데 단군이 있었다는

  • 장당경 / 藏唐京 [지리/인문지리]

    고조선시대 단군(檀君)의 도읍지.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1 고조선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요(堯)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