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전체] “심풍지” 에 대한 검색결과 3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연구성과물(36)

사전(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738(영조 14)∼1793(정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상(士常), 호는 기기재(頎頎齋). 공주출신. 속(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령(掌令) 태현(宅賢)이고, 아버지는 영천군수 구(銶)이...
    이칭별칭 사상(士常)| 기기재(??齋)| 정정(貞定)
  • 심능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766(영조 42)∼? 조선 후기의 문신. [내용] 본관은 청송(靑松). 서울 출신. 자는 유한(維翰). 좌참찬 택현(宅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銶)이고, 아버지는 판서 풍지(豊之)이며, 어머니는 유언수(兪彦銖)의 딸이다. ...
    이칭별칭 유한(維翰)
  • 이복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의 변통, 홍문관 권점(圈點)의 폐해 등 7개조에 달하는 혁폐안(革弊案)을 상소하였다. 또 홍낙순(洪樂純) 옥사에 관련된 홍계능(洪啓能)ㆍ서형수(徐瀅修) 등의 일로 이조판서인 ()와 상소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를 두고 정조는 정유처분(丁酉處分 : 17...
    이칭별칭 길선(吉善)
  • 조덕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明鼎)에게 입양되었다. [내용] 1775년(영조 5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다음해 사헌부지평으로 재직하였다. 이듬해 7월 헌납 ()의 상소로 1775년의 문과가 파방(罷榜)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792년(정조 16) 12...
    이칭별칭 수이(修爾)| 효정(孝貞)
  • 서계집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등 4인, 제2책에 훈련도감 안핵어사(按覈御史) 심낙수(沈樂洙) 등 4인, 제3책에 홍충도(洪忠道) 암행어사 이정운(李鼎運) 등 6인, 제4책에 제주순무어사(濟州巡撫御史) 박천형(朴天衡), 제5책에 강화부찰리사(江華府察理使) 심염조(沈念祖) 등 6인,...

고서·고문서(31)

  • 曰, 不允。 持平啓曰, 請大靜縣爲奴罪人金壽賢, 依律處斷。 請興陽縣爲奴罪人河翼龍, 南海縣爲奴罪人金重得, 亟令王府設鞫得情, 夬正王法。 請梁山郡定配罪人錫達, 依律處斷。 請削黜罪人金漢耆亟施竄配之典。 請 海南縣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答曰, 不允。 啓曰, 請大靜縣爲奴罪人金壽賢, 依律處斷。 請興陽縣爲奴罪人河翼龍, 南海縣爲奴罪人金重得, 亟令王府設鞫得情, 夬正王法。 請梁山郡定配罪人錫達, 依律處斷。 請削黜罪人金漢耆, 亟施竄配之典。 請海南縣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34778 B034778 남해현 南海縣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正祖 卽位年 7月 23日_040 ○獻納啓曰, 南海縣圍籬安置罪人具庠, 本以凶譎之性, 兼有悖戾之行, 陰結凶類, 綢繆祕謀, 出沒閃倏, 如鬼如蜮, 而今其凶肚眞贜, 綻露於凶賊載興文書中, 所捉書札, 指意叵測, 情節...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9373 B049373 덕적첨사 德積僉使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正祖 2年 8月 11日_019 ○兵批, 判書李徽之進, 參判尹坊病, 參議洪樂彬未肅拜, 參知李世奭入直進, 承旨申應顯進, 以李性源爲同知, 鄭一祥爲副摠管, 李仁秀爲兼司僕將, 李周爀爲五衛將, 李尙顯爲忠壯將,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7961 B047961 대정현감 大靜縣監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正祖 4年 3月 15日_011 ○以李亨逵爲承旨, 沈命德爲司諫, 尹東暹爲刑曹判書, 鄭民始爲大司成, 林道浩·洪柱翼爲兵曹佐郞, 申史澳爲監察, 朴行淳爲宗簿主簿, 朴弼瑞爲大靜縣監。 今加通政, 嘉禮時都廳, 加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1)

  • /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8∼1793). 1771년(영조 4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기용되었으며, 병조정랑·부수찬 겸 시강원문학 등을 거쳤다. 이후 수찬·교리·대사성·이조참판·대사간·대사성·대사헌·도승지·예조참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