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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순원왕후” 에 대한 검색결과 20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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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91)

사전(9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조(文祖)를 낳았다. 문조는 1812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문조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830년 22세로 죽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하고 1834년 익종에 추존되었다. 는 1827년 존호 명경(明敬)이 올려졌고 헌종 연간에 왕대비ㆍ대왕대비에 진호...
    이칭별칭명경(明敬)|문인(文仁)|광성(光聖)|융희(隆禧)|정렬(正烈)|선휘(宣徽)|영덕(英德)
  • 인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내곡동 산 13의 1 에 있는 조선 제23대왕 순조와 비 () 김씨(金氏)의 능. [내용] 사적 제194호. 1834년 순조가 왕위에 오른 지 34년 만에 죽자 처음...
  • 익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809(순조 9)∼1830(순조 30). 조선 후기의 추존왕. [내용] 이름은 영(旲 : 원래의 음은 대이나 영으로 부르도록 정하였음.),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 제23대왕인 순조의 세자(世子)로 어머니는 김씨...
    이칭별칭 덕인(德寅)| 경헌(敬軒)| 효명(孝明)|문호(文祜)
  • 효정전(孝正殿)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효정전 효정전 孝正殿 혼전(魂殿) () 왕실왕실의례/흉례 개념용어 대한민국 조선 이현진 [정의] 창경궁에 있던 순조의 비 ()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상위어혼전(魂殿) | 관련어순원왕후(純元王后)
  • 효정황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철종 8) 순조의 비인 ()가 죽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딸이 있었지만 일찍 죽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경릉(景陵)이다. 『선원계보(璿源系譜)』

고서·고문서(88)

  • 국휼등록(國恤謄錄) [장서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2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등록은 1857년(철종 8) 8월에 순조비 김씨가 승하하고 장생전에서 재궁을 제작하여 능소에서 하관할 때까지 일련의 작업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장생전이란 관서는 이 등록에 드러나듯이 많은 인원과 물자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장생전 제조인 호조판서를 비롯하여...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등록 | 형식분류고서-등록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국휼등록(國恤謄錄) [장서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2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순조비 (1789-1857)는 정조가 승하하기 몇 달 전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었고 정조 국상이 끝난 1802년(순조 2) 10월에 왕후로 책봉되었다. 는 1남 3녀를 낳았고 철종 승하 후에 왕실의 어른으로서 전계군의 셋째 아들 이원범을 후사로 지명하였고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등록 | 형식분류고서-등록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국휼등록(國恤謄錄) [장서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2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의 서명에 등장하는 는 1857년 8월 4일에 창덕궁 양심합에서 승하한 순조비를 말한다. 는 1849년(헌종 15)에 헌종이 후사없이 죽었을 때 왕실의 어른으로서 영조의 혈맥을 잇는 전계군의 3자 이원범을 후사로 지명하였고 수렴청정하였다.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등록 | 형식분류고서-등록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규장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1단계) | 서울대학교]
    1857년(철종 8) 8월부터 12월까지 치러진 순조(純祖)의 비(妃) () 김씨(1789~1857)의 국장(國葬) 의식 과정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이다. 1800년(정...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의궤 | 형식분류고서-의궤 | 현소장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빈전혼전도감의궤(殯殿魂殿都監儀軌) [규장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1단계) | 서울대학교]
    1857년(철종 8) 8월부터 12월까지 치러진 순조(純祖)의 비(妃) () 김씨(1789~1857)의 국장(國葬) 때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을 설치하고 그 운영 과정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의궤 | 형식분류고서-의궤 | 현소장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기초학문(9)

  • 1859년(哲宗 10) 의 祔廟와《[]祔廟都監儀軌》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김종준, 게재일 : 2005
    02268 김종준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2005 1859년(哲宗 10) 의 祔廟와《[]祔廟都監儀軌》 https://www.krm.or.kr/krmts/link.html
    유형논문 | 게재일2005
  • 한글편지에 나타난 의 일상과 가족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이기대, 게재일 : 2009
    42225 이기대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9 한글편지에 나타난 의 일상과 가족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dbGubun=SD
    유형논문 | 게재일2009
  • 哲宗初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 關係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임혜련, 게재일 : 2013
    44504 임혜련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학회 2013 哲宗初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 關係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dbGub
    유형논문 | 게재일2013
  • 한글편지에 나타난 의 수렴청정과 정치적 지향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이기대, 게재일 : 2009
    44553 이기대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국제어문학회 2009 한글편지에 나타난 의 수렴청정과 정치적 지향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dbGubun
    유형논문 | 게재일2009
  • 憲宗初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 關係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임혜련, 게재일 : 2013
    44857 임혜련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호서사학회 2013 憲宗初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 關係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db
    유형논문 | 게재일2013

주제어사전(11)

  • /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후기의 비(1789∼1857). 안동김씨 영안부원군 조순의 딸이다. 1800년(정조 24) 초간택ㆍ재간택을 거쳐 정조의 뜻이 결정되었다. 1802년(순조 2) 10월 왕비로 책봉되었다.

  • 김좌근 / 金左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7∼1869). 순조비 의 오라버니로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형조판서·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실록총재관으로《철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 명온공주 / 明溫公主 [역사/조선시대사]

    1810년(순조 10)∼1832년(순조 32). 순조의 딸로 어머니는 이다. 동녕위 김현근에게 하가하였다. 김현근은 진사 김한순의 아들이다. 1817년 명온공주로 봉해졌으며 1823년 김현근과 혼인하였으나 태어날 때부터 몸이 병약해 혼인한지 9년 만에 졸했다.

  • 철인왕후 / 哲仁王后 [역사/조선시대사]

    1837년(헌종 3)∼1878년(고종 15). 조선 제25대왕 철종의 비. 아버지는 문근, 어머니는 이용수의 딸이다. 대왕대비 의 근친으로 1851년(철종 2) 왕비에 책봉되어 어의동 본궁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1858년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다. 존호를

  • 헌종 / 憲宗 [종교·철학/유학]

    조선 제24대 왕(1827∼1849). 순조의 손자. 익종의 아들이다. 8세에 즉위하자 가 수렴청정을 했다. 친정할 때는 삼정의 문란 등 국정이 혼란했고, 수재의 발생으로 민생고가 가중됐다. 기해박해와 오가작통법으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23세로 후사 없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