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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순라군” 에 대한 검색결과 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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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46)

사전(3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번갈아가며 하루씩 1장 3졸이 순행하였다. 은 군호(軍號)와 경첨(更籤)을 사용하였다. 야간통행 위반자를 적발하면 부근의 경수소(警守所)에 구금했다가 다음날 군영에서 곤형(棍刑)으로 처벌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만기요...
  • 사약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청하여 대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大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을 제수받았다. 이러한 외교전의 일환으로 내법좌평인 그는 그해 7월 남제(南齊)로 파견되었으나 서해에서 고구려의 과 마주쳐 막혀, 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돌아왔다.
  • 포관격탁 [옛 편지 낱말사전 | 한림대학교]
    문지기와 (). 곧 지위가 낮은 벼슬아치를 이름. 古人於抱關擊柝之任 尙甘自居 此乃治民之長也, 이재완(李載完), 35-99
    분야문화‧생활 | 유형문헌
  • 근대신어 : 순찰(巡察)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5일) 별도로 을 파견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보고하게 함으로써 변방이 안정되었으니 법 행위
    출전西遊見聞[交詢社] | 계통분류 [정치경제] 법 [예술감각] 행위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 졸경(卒更)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졸경 졸경 卒更 (), 나졸(邏卒) 정치사법/치안 개념용어 대한민국 조선 차인배 [정의] 조선시대 요역에 동원되어 도적 및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하여 밤에 궁중과 도성 안팎을
    관련어순라군(巡邏軍), 나졸(邏卒)

고서·고문서(10)

  • 28267 B028267 교동부 喬桐府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5年 5月 26日_029 爲, 判尹李鼎輔, 兵判趙雲逵, 竝越俸一等, 當該龍虎將, 令兵判, 當日露梁開坐, 決棍十度, 該番將, 決棍汰去, 身爲大將, 若有號令, 兵, 其敢飮酒乎? 事之寒心, 莫此爲甚。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28303 B028303 교동부 喬桐府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5年 5月 26日_029 爲, 判尹李鼎輔, 兵判趙雲逵, 竝越俸一等, 當該龍虎將, 令兵判, 當日露梁開坐, 決棍十度, 該番將, 決棍汰去, 身爲大將, 若有號令, 兵, 其敢飮酒乎? 事之寒心, 莫此爲甚。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春秋武士都試設行于此[閑良沒技及優等者直赴殿試出身之沒技者加資]禁盜廳[在楓橋東]廵廳[在南大門內東官所居]征東省[在佛恩洞南]元至元間以征日本命高麗王置省典軍興之務後復遣官以中國之法治之至恭愍朝上表曰比來省官皆托婦寺濫受朝命擅作威福願自今革去都評議使司[在花園東今稱合坐洞]鄭道傳記洪武二 ....
    출처전거中京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夜人李斗長, 被捉於禁衛營邏卒徐水哲等, 縳授坐更人, 仍致殞命, 故邏卒等, 今方囚禁推覈, 邏卒之捉犯夜人, 乃其職耳, 似不可論以殺人之律, 渠若遲晩, 則可以酌處, 而常漢迷甚, 意其就服則必死。 每稱曖昧, 終死於拷掠之下, 則可矜矣。” 上命四名, 參酌定配, ...
    출처전거肅宗實錄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四名, 參酌定配, 坐更人放送。 御營大將李義微曰: “彼地關外, 方有戰爭之事云。 元末紅巾之禍, 至及於黃海道, 元之餘孽, 衡突, 咸興, 定平等地, 此亦不可不虞矣。 西路險阻, 有曉星嶺淸川江大同江洞仙嶺靑石泂臨津江, 而淸川, 大同, 自有兵使監司鎭之。 洞仙則因鄭維岳言, 今已種...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기타자료(2)

  • 신라 눌지왕이 제상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내다. [동아시아 ‘교류’ 관련 한국고대사 기초자료 연구 : 문서, 사람, 물품 | 고려대학교]
    였다. 백제인으로 전에 왜에 들어간 자가 신라가 고구려와 더불어 왕의 나라의 침략을 도모하려고 한다고 참소하였다. 왜가 마침내 군사를 보내 신라 국경 밖에서 정찰하고 지키게 하였다. 마침 고구려가 쳐들어 와서 왜의 ()을 포로로 잡아 죽였다. 왜 왕은 이에...
    대표표제어신라 눌지왕이 제상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내다. | 주제분류교류담당 | 연대418년(戊午/신라 눌지마립간 2/고구려 장수왕 6/백제 전지왕 14/東晉 義熙 14/倭 允恭 7)
  • 신라가 왜에 보낸 질자(質子) 미사흔(未斯欣)이 돌아오다 [동아시아 ‘교류’ 관련 한국고대사 기초자료 연구 : 문서, 사람, 물품 | 고려대학교]
    하였다. 마침 고구려가 쳐들어 와서 왜의 을 포로로 잡아 죽였다. 왜 왕은 이에 백제인의 말을 사실로 여겼다. 또한 신라 왕이 미사흔과 제상의 가족을 옥에 가두었다는 말을 듣고, 제상을 정말로 배반한 자라고 말하였다. 이에 왜왕은 군사를 내어 장차 신라를 습격하려...
    대표표제어신라가 왜에 보낸 질자(質子) 미사흔(未斯欣)이 돌아오다 | 주제분류교류담당 | 연대418년(戊午/신라 눌지마립간 2/고구려 장수왕 6/백제 전지왕 14/東晉 義熙 14/倭 允恭 7)

주제어사전(1)

  • / [정치·법제/법제·행정]

    며 하루씩 1장 3졸이 순행하였다. 은 군호(軍號)와 경첨(更籤)을 사용하였다. 야간통행 위반자를 적발하면 부근의 경수소(警守所)에 구금했다가 다음날 군영에서 곤형(棍刑)으로 처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