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전체] “소위장군” 에 대한 검색결과 23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연구성과물(20)

사전(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군은 진위장군(振威將軍)으로, 위의장군은 ()으로 개칭되었다. → 무산계 『조선초기(朝鮮初期) 양반(兩班) 연구(硏究)』(이성무, 일조각, 1980)
  • 진위장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군은 진위장군(振威將軍)으로, 위의장군은 ()으로 개칭되었다. →무산계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朝鮮初期) 양반(兩班) 연구(硏究)』(이성무, 일조...
  • 정사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毅將軍)이라고 하였다. 그런데『경국대전』에는 무산계의 위용장군은 진위장군(振威將軍)으로, 위의장군은 ()으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 한편, 1443년(세종 25) 종친계의 상계‧하계는 선위대부‧광휘대부로 신설해『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1865년(고...
  • 영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남편의 경우는 문관 정4품은 상계에 봉정대부(奉正大夫), 하계에 봉렬대부(奉列大夫)로, 종4품은 상계에 조산대부(朝散大夫), 하계에 조봉대부(朝奉大夫)로, 무관의 경우는 정4품은 상계에 진위장군(振威將軍), 하계에 (), 종4품은 상계에 정략장군(定略將軍...
  • 마감칠(馬勘七)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 선문대학교]
    라는 1596년에 처음으로 수직되었으며, 1612년에 관복을 지급받았고, 1613년 호분위호군(虎賁衛護軍)에 제수된 뒤 1615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승품(陞品)되었다. 그의 사후에 동생 마감칠이 습직(襲職)하였다. 『光海君日記』; 『...
    유형분류인물

고서·고문서(12)

  • 1602년 윤안중(尹安中) 고신(告身)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
    1602년12월 6일에 선조가 해남에 사는 윤안중에게 정4품 무관의 품계인 을 내린 문서이다.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무안 여흥민씨 민종기
  • 1606년 윤안중(尹安中) 고신(告身)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
    1606년정월에 선조가 예차내금위윤안중을 행충좌위부사용으로 임명하는 문서이다.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무안 여흥민씨 민종기
  • 1634년 이수인(李壽仁) 고신(告身) 4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634년 7월 12일에 인조가 이수인에게 행용양위부사과의 관직을 내리는 교지이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연안이씨종중문적박물관
  • 1634년 이수인(李壽仁) 고신(告身) 3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634년 5월 26일에 인조가 이수인에게 행용양위사과의 관직을 내리는 교지이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연안이씨종중문적박물관
  • 1599년 손시(孫時)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1599년(선조32) 손시(孫時: 1555~1603)를 () 행(行) 훈련원(訓鍊院)판관(判官)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왜란이 끝난 다음해인 이 해 7월에 손시는 최소 3차례에 걸쳐 무려 11등급을 승진하게 되었다. 정유재란때 세운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경주 양동 경주손씨 서백당

주제어사전(3)

  • /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정4품 하계의 무관의 품계명.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무산계를 제정할 때 상계는 위용장군(威勇將軍), 하계는 위의장군(威毅將軍)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에서는 위용장군은 진위장군(振威將軍)으로, 위의장군은 (

  • 진위장군 / 振威將軍 [정치·법제/국방]

    ()으로 개칭되었다.

  • 정사품 / 正四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장군은 진위장군으로, 위의장군은 으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