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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세자복” 에 대한 검색결과 2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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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1)

사전(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왕세자의 정복(正服). [내용] 조선 이전의 것은 알 수 없고, 조선시대의 은 대례‧제복(祭服)인 면복(冕服)과 조복(朝服)에 해당하는 원유관(遠遊冠)‧강사포(綱紗袍)와 공복(公服)‧상복(常服)으로서의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王) 강사포(絳紗袍), 곤룡포(袞龍袍), 서연복(書筵服), 칠장복(七章服) 생활 풍속의생활/의복 의복 대한민국 조선 태조~정조 이민주 상복(常服), 예복(禮服) ...
    동의어왕세자복(王世子服) | 관련어강사포(絳紗袍), 곤룡포(袞龍袍), 서연복(書筵服), 칠장복(七章服)
  • 흑의(黑衣)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의 노부 중 소친시(小親侍)와 별감(別監)이 흑의를 착용한다. [용례] 禮曹以衰絰之制 (중략) 親子服與王同 (중략) 二十七月禫祭 服黑衣 烏紗帽 黑角帶 白皮靴 禫後吉服[『숙종실록』 46년 6월 8일].
    상위어상복(喪服) | 동의어현의(玄衣) | 관련어담제(禫祭), 오사모(烏紗帽), 흑각대(黑角帶)
  • 사조룡의(四爪龍衣)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조룡의(四爪龍衣)를 입고 겸양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세조실록』 2년 3월 21일]. [용례] 昔予服四爪龍衣 後聞中朝親王服五爪龍 予亦服之 以待天使 其後 帝賜五爪龍服 今令四爪龍 則於我無嫌 於朝廷法制 亦無妨焉[『세종실록』 31년 9...
    동의어사조룡(四爪龍), 사조룡복(四爪龍服) | 관련어보(補), 상복(常服), 오조룡의(五爪龍衣)
  • 상식(上食)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번 시행하였다. [용례] 朝夕哀奠及食時上食儀 朝奠 王其服 詣殯殿戶外之東西向坐 俯伏哭 大君諸君在其後 重行西向南上俯伏哭 (중략) 食時上食 如平時 不用肉膳 行禮如朝奠儀[『세종실록』 28년 3월 24일] 『고려사(高麗史)』 『국조오례의(國朝五禮...
    상위어상례(喪禮) | 관련어국상(國喪), 산릉(山陵), 혼전(魂殿)

고서·고문서(11)

  • 飯後卒襲,唯掩ㆍ瑱ㆍ幎ㆍ握ㆍ屨。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tkc.or.kr/inLink?DCI=ITKC_MP_0597A_0970_030_0090_2015_022_XML 022 士禮飯後乃襲皮弁者,以皮弁非美服也。後,唯用一稱,則宜於飯前襲上服,而溫公令於飯後始著深衣者,以鄭氏於乃襲三稱之文,誤解無狀也。此於事理,極有不便,尸未設飾...
    권차명喪儀節要 卷一 | 문체雜著類|其他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有故事,不須代受."上從演議.上曰"世子儀仗,今作大儀仗.其行路及殿庭館庭何?"僉曰"儀仗於路上左右分行,東宮不由中道行,殿庭則雖至尊,儀仗不得入,止于勤政門外,到太平館,入庭分立左右爲便."上曰"可."又曰"昔予服四爪龍衣,後聞中朝親王服五爪龍,予亦服之,以待天使,其後,帝賜五爪龍服.今令四...
    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 주역대전 : 蹇卦_효사-삼효-소상 [<한국주역대전>편찬,표점,주해,번역,해제의 DB구축 | 성균관대학교]
    때문이다. 正義, 內卦三爻, 唯九三一陽, 居二陰之上, 是內之所恃, 故云內喜之也. 『주역정의』에서 말하였다:내괘의 삼효에서 유일한 양효인 구삼은 두 음효의 위에 있으면서 내괘가 의지하는 것이 되므로 ‘안에서 기뻐한다’고 하였다. 傳, 春秋言歸. 〈桓十五年, 鄭...
    서명주역대전 | 자료문의성균관대학교 주역대전편찬팀(연구책임자 : 최영진 교수)
  • 추안급국안 : 정축년(1817, 순조 17) 죄인 이희조(李希祖) 등 신문기록 [<추안급국안> 정서화 및 DB 기반 구축 | 전주대학교]
    洪燦謨 旣以無根之而矣身今則曰燦謨七在果無此言 納供矣身便是誣人卽爲從實直告供曰俄者精神昏迷 不能記得而更思則燦謨七在果有此言矣問曰矣身雖 在遐鄕而身居侍從之列今此嚴問之下何敢頃刻變幻 或稱不聞或稱聞之者此何等關係而若是呑吐乎供曰 俄者昏迷所致也實則果聞之矣問曰矣身與柳七在相 親聚會李游誠洪...
    서명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권책027 | 자료문의전주대학교(연구책임자 : 변주승 교수)
  • 주역대전 : 睽卦_효사-초효 [<한국주역대전>편찬,표점,주해,번역,해제의 DB구축 | 성균관대학교]
    B와 영인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三’으로 바로잡았다.六五之間, 宜逸而不可禁. 然五自應二, 三自應上, 四旡所歸, 其, 勿逐可也. 임률이 말하였다:소를 잃음은 그 유순함을 잃음이고, 양을 잃음은 그 사나움을 잃음이고, 말[馬]을 잃음은 그 강건함...
    서명주역대전 | 자료문의성균관대학교 주역대전편찬팀(연구책임자 : 최영진 교수)

주제어사전(1)

  • / [정치·법제/법제·행정]

    왕세자의 정복 조선시대의 은 대례·제복인 면복과 조복에 해당하는 원유관·강사포와 공복·상복으로서의 익선관·곤룡포 및 관례 전에 착용하는 책복이 있다. ≪국조속오례의보≫ 서례에 보이는 바로는 장복 곧 곤복을 착용할 때에는, 머리를 쌍동계로 하고 그 위에 공정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