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사례훈몽”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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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5)
사전(4)
- 사례훈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지나지 않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가례의 정신적인 길잡이가 된 중요한 책이었다. 조선 중기까지의 조선조에서의 가례의 인식과 그 시용이 어떠하였는가를 방증하는 데 귀중한 참고가 되는 저작물이기도 하다. 사례훈몽 / 관례 ...
- 家禮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古今詳定禮儀, 新儀, 國朝五禮儀, 五禮儀抄, 續五禮儀, 奉先雜儀, 退溪先生喪禮問答, 五先生禮說, 喪禮考證, 奉先諸儀, 喪禮考證, 四禮訓蒙, 禮學纂要, 冠婚喪祭儀, 愼終錄, 喪禮備要, 喪祭禮, 喪祭圖式, 五服沿革圖, 鄭逑, 疑禮問解, 四禮樂說, 喪禮手錄, 續疑禮問解, 喪...출전오주연문장전산고 | 수록위치16권 2장 6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이항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없을 것이며, 또한 그의 문장은 이러한 기품에서 이루어졌으니 뛰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면서 기품과 인격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저술로는 1622년에 간행된 ≪사례훈몽 四禮訓蒙≫ 1권과 ≪주소계의 奏疏啓議≫ 각 2권, ≪노사영언 魯史零言≫ 15권과 시문 등이...이칭별칭 자상(子常)| 필운(弼雲), 백사(白沙)| 문충(文忠)
- 가정의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적인 제도화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관례 및 혼례를 상례 및 제례와 함께 가정의례로서 학자들이 다루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경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편찬된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 家禮輯覽≫, 이항복(李恒福)의 ≪사례훈몽 四禮訓蒙≫, 신...이칭별칭통과의례
고서·고문서(1)
- 가옥(家舍) 소송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되어 죽었다. 저서에 ≪백사집(白沙集)≫, ≪북천일기(北遷日記)≫, ≪사례훈몽(四禮訓蒙)≫ 따위가 있다.〈오성부원군〉가 지내던 곳으로, 당시의 가옥은 세월이 지나 퇴패(頹敗)해져 오랫동안 방치[抛棄]해 두었는데, 그 사이에 마을 주민들이 그 기지에 가옥을 건축하고 거주...재판기관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 민사부 | 판결일자1909년 04월 07일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주제어사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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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훈몽 / 四禮訓蒙 [사회/가족]
조선 중기의 문신 이항복(李恒福)이 저술한 사례의 정신적인 계몽서. 1권 1책. 목판본. 고례(古禮)의 정신적인 근원인 『예기(禮記)』에서 사례(四禮)에 관한 여러 요긴한 항목과 술어 및 적절한 구절을 뽑고, 이언적(李彦迪)의 『봉선잡의(奉先雜儀)』를 많이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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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 李恒福 [종교·철학/유학]
조판서, 영의정을 역임 하였다. 저술로는 1622년에 간행된 <사례훈몽> 1권과 <주소계의> 각 2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