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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분충서난록” 에 대한 검색결과 14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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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1)

사전(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내용은 적진을 탐지한 보고서와 상소문, 왜승(倭僧)에게 보낸 서한 등으로 편집되어 있다. 먼저 청정영중탐정...
  • [한국학영문용어용례정보 구축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중기에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지은 임진왜란 때의 사적(史籍)으로, 1739년에 처음 간행됨.
    정의조선 중기에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지은 임진왜란 때의 사적(史籍)으로, 1739년에 처음 간행됨.[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영문 용어‧용례 사전] | 문광부표기Bunchung seonannok | MR표기Punch’ung sŏnannok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용어 용례 연구팀(연구책임자 : 한형조 교수)
  • 유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묘향산으로 들어가 휴정의 영전에 절하였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사명당대사집』 7권과 『(錄)』 1권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제자들...
    이칭별칭 이환(離幻)|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종봉(鍾峯)|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
  • 사명대사(四溟大師)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 선문대학교]
    康)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사명당대사집』7권과 『()』1권이 있다.
    유형분류인물
  • 포암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記) 등에서는 그의 문장력을 엿볼 수 있다. 「송조사취명규왕근벽성서(送趙士聚明奎往覲碧城序)」에는 벽성의 적지(謫地)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젊은이에게 선비의 ‘특립자수(特立自守)’하는 도리를 면려하는 내용이 곡진하게 표현되었다. 「서(序)」에서는 사명당(...

고서·고문서(2)

  • 내용분류사회-역사 | 형식분류고서-역사서 | 현소장처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리치몬드 문고)
  • 포암집 [규장각 도서자료 연구사업(2단계) | 서울대학교]
    序 (10) 승려 惟政(1544∼1610)의 『』에 대해 지은 序文이다. 四溟堂이 임진왜란 때 僧軍을 조직하여 국난을 구제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거를 儒家의 입장에서 논구하는 내용이다. 送濟州御史李-度遠-序 (11) 濟州御史 李度遠을 보내며 써...
    분야문학 | 유형문헌

주제어사전(3)

  • / [종교·철학/유학]

    고 체재를 갖추면서 ‘’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청천집 / 靑泉集 [문학/한문학]

    8편, 발(跋) 4편, 전(傳) 1편, 찬(贊) 1편, 비명(碑銘) 2편, 제문 14편, 권6은 애사 3편, 잡저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청천집』의 「임서하집발 林西河集跋」·「박절사전 朴節士傳」·「신각송운대사발 新刻松雲大師跋」 등은 주목할 만한

  • 유정 / 惟政 [종교·철학/불교]

    귀국하였다. 나라에서 가선대부의 벼슬을 주었다. 67세에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는 <> <사명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