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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병마평사” 에 대한 검색결과 4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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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42)

사전(32)

  • 평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 초기의 정6품 관직. [내용] ()의 약칭이다. 병마절도사의 막하에서 군사조치에 참여하며 문부(文簿)를 관장하고 군자(軍資)와 고과(考課) 및 개시(開市) 등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처음에는 병마도사(兵馬都...
    이칭별칭병마평사
  • 안유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폐모반대소로 옹진에 유배되었다가 4년 뒤인 1617년에 풀려났다. 1626년(인조 4) ()로 영변에 부임하였고, 1629년에는 제릉참봉(齊陵參奉), 1634년에는 빙고감예관(氷庫監刈官)을 역임하였다....
    이칭별칭 수초(遂初)| 남파(南坡)
  • 강문우(姜文佑)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 선문대학교]
    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함경북도(咸鏡北道) 정문부(鄭文孚)의 휘하에서 경성(鏡城)을 수복할 당시 선봉에 서서 전공을 세웠다. 길주(吉州)에서도 상황을 살피러 온 일본군 1백여 명을 상대로 수십 명의 머리를 베는 전과를 올렸다.
    유형분류인물
  • 남태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使) 만봉(萬封)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장원서봉사 달명(達明)에게 입양하였다. [내용] 1732년(영조 8)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주서ㆍ전적ㆍ병조좌랑ㆍ정언을 역임하고 북도감(北道監)이 되어 북관편의(北關便宜) 13조를...
    이칭별칭 낙수(洛?)| 죽리(竹裏)| 정희(靖僖)
  • 송방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에 원군을 요청하자 1617년 비변사에 의하여 유장(儒將)으로 천거되어 평안도(平安道)로 임명되었다. 이 때 명나라에 들어가는 보빙사(報聘使)의 짐을 검색하려고 용천관(龍川館)에 갔다가 갑자기 죽었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1665년(현종 6)...
    이칭별칭 영숙(永叔)| 습정(習靜)

고서·고문서(10)

  • 갖추어지지 않았다. ○김시우(金時遇)가 감을 보냈다. ○우도(右道) () 조덕원(趙德源)이 성주 관아에 들어왔는데, 헌(憲)의 아들이라고 한다. 初八日庚午, 陰雨, 日或出。 初八日庚午, 陰雨, 日或出。 ○留堂。○食于下家, 與天澤着碁。○出琴撫之, 手...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정중(李靜中)‧도이효(都而孝)‧안태거(安太居) 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파해 갔다. ○이인박(李仁博)의 종이 8장(張)에 글씨를 쓰고, 또 기촌당(企村堂) 3자를 썼는데, 모두 좋지 못하다. ○()가 화원(花原)에서 성주 관아로 들어왔다. ○판...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교관(敎官)이 찾아와서 내일 말을 빌려주기로 승낙하고, 바로 갔다. ○() 조덕원(趙德源)이 성주 관아에 들어왔다. ○이격(李格)이 사람을 보내 소금과 장(醬)을 청하며 누이의 장례에 일할 일꾼에게 먹이려 한다고 하고, 또 회풍(回風) 1필(匹)을 빌리며...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들었다가 낮에 일어나 조금 먹었다. 함께 바둑을 두었다. 김담수(金聃壽)‧이인박(李仁博) 등이 찾아왔기에, 나도 만나보았다. ○조(趙) ()가 편지를 보내서 개령(開寧)으로 가서 미처 와보지 못한다는 뜻을 일렀다. ○홍치무(洪致武)의 칭념(稱念)으로 쌀‧...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에게 부쳐서 중응(仲應)에게 전하기를 청하고 (벼루를 담을) 상자[匣]를 만들어주기를 청했다. ○아침에 조(趙) ()에게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가 답장을 썼기에, 내가 다시 답장을 썼다. ○판관에게 물 긷는 비[汲婢] 의금(矣今)이 말이 많...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주제어사전(4)

  • / [정치·법제/법제·행정]

    병마절도사의 막하에 있던 정6품 관직. 병영에서의 군사조치에 참여하는 한편, 문부(文簿)를 관장하고, 군자와 고과 등의 공사를 담당하였는데, 문신으로 임명되었다. 평안도(平安道)와 영안북도(永安北道)의 양병영(兩兵營)에만 두었는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 이목 / 李穆 [종교·철학/유학]

    1471(성종 2)∼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이백유 현손, 아버지는 이윤생,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484년(성종 15)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굉필·정여창 등과는 동문수학한 관계이다. 성균관적적, 종학사회, 영안남도 등을 역임

  • 평사 / 評事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초기의 정6품 관직. 병마절도사의 막하에서 군사조치에 참여하며 문부를 관장하고 군자와 고과 및 개시 등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처음에는 병마도사를 두었으나 1466년(세조 12)에 로 개칭하여 평안도와 영안북도에 각각 1인씩을 두었는데, 이는 변방에

  • 임제 / 林悌 [문학/한문학]

    했으며 『중용』을 800번이나 읽은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1576년(선조 9)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진사에 합격했다. 이듬해에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西北道)·관서 도사(關西都事)·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