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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무단미” 에 대한 검색결과 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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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8)

사전(4)

  • TD_F3_D_0008 조세 調度, 增斂, 民戶, 米豆, 上戶, 中戶 恭愍王 食貨志 D_10_02_24 대동운부군옥 10권 2장 24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0권 2장 24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고려 후기 공민왕 때 국고의 부족을 이유로 거두어들였던 잡세. [내용] 무방미(無妨米)라고도 하였다. 1359년(공민왕 8) 이래로 홍건적(紅巾賊)이 계속 고려를 침범하니 국고가 고갈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백성으로부터 쌀과 콩...
    이칭별칭무방미
  • 재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중앙집권적 봉건체제가 더욱 약화되어 국가의 재정은 파국상태였으며 이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품미(品米)‧품포(品布)‧품은(品銀)‧품마(品馬)‧()‧선세(船稅)‧해세(海稅)‧상세(商稅)‧무장세(巫匠稅) 등의 임시세를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 조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를, 강원도 농민들에게는 이른바 산세(山稅)라 하여 잣을, 또 어민들에게는 선박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선세(船稅) 및 해세(海稅)를 징수하였다.그리고 상인들에게는 각 지방의 주요 통로에서 일종의 통행세로서 상세(商稅)를, 그리고 소금을 생산하는 염호(鹽戶)...

고서·고문서(4)

  • 10620 B010620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19年 4月 5日_028 每歲以數萬石分給, 移轉于近處各邑, 如有過期未納者, 解由拘礙, 定爲令甲, 則, 似好矣。 寅明曰, 軍餉, 散之易, 而聚之難。 非災年, 則不必移轉, 捧者, 旣令見拘解由, 則解由之法,...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納哈出收散卒遁去,其後納哈出遣人通好,獻馬於王,又獻馬於高皇帝以致禮意盖心服之也 八月王自福州至淸州 耽羅牧胡古禿不花等以星主高福壽叛附于元,元置萬戶官以領之 以調度不及增斂米豆,名曰 初元后奇氏怨王誅奇轍等,必欲報仇,崔濡在元,承望后旨,且恃金鏞爲內應搆王於元冬十一月元廢王,立德興君塔思帖木...
    서명歷史輯略 | 자료명恭愍王
  • 新訂東國歷史 [근대 교과서[讀本類] 해제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 성신여자대학교]
    ᄒᆞ고 角戰不己ᄒᆞ거ᄂᆞᆯ 太祖ㅣ 奇伏을 設ᄒᆞ야 大破ᄒᆞ시니 納哈出이 遁去ᄒᆞ니라 ○八月에 耽羅 牧胡古禿不花 等이 星主高福壽로써 叛ᄒᆞ야 元에 附ᄒᆞ다 ○調度가 不給ᄒᆞᆷ으로 米豆를 增歛ᄒᆞ니 名曰 라 ᄒᆞ더라 ○德興君塔思帖木兒가 左政丞이라 自稱ᄒᆞ다 塔思帖木兒의...
    서명新訂東國歷史 | 자료명高麗記下
  • 東國歷代史略 [근대 교과서[讀本類] 해제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 성신여자대학교]
    從角戰不已太祖屢射殺其將又設奇伏大敗之納哈出知不可敵收散卒遁去於是東北鄙悉平○八月耽羅牧胡古禿不花等以星主高福壽叛附于元○三月以調度不給增歛米豆名曰○冬十月初元后奇氏怨王誅奇轍等必欲報仇崔濡在元承望后旨搆王於元主元主遂廢王以德興君塔思帖木兒代爲高麗王塔思帖木兒本國名譓忠宣之子也於是濡自爲左政丞...
    서명東國歷代史略 | 자료명高麗紀

주제어사전(1)

  • / [경제·산업/경제]

    고려 후기 공민왕 때 국고의 부족을 이유로 거두어들였던 잡세. 1359년(공민왕 8) 이래로 홍건적이 계속 고려를 침범하니 국고가 고갈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백성으로부터 쌀과 콩을 차등 있게 더 거두었는데, 대호는 쌀과 콩을 각각 1석, 중호는 10두, 소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