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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몸돌석기” 에 대한 검색결과 10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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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9)

사전(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세 말기까지 동아시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는 특히, ‘영리한 원인(Homo habilis)’이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해서 직립원인(Homo erectus)에 이르러 정상에 도달하였다. 재료는 주로 수석(燧石)과 석영암(石英岩)이다.
    이칭별칭역석석기|석핵석기
  • 서울면목동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집된 유물 중 완형은 모두 39점이었다. 이 유물들이 단일문화권에 속한다는 사실은 지층단면의 조사결과 단일문화층만이 확인됨으로써 알 수 있었다. 채집된 석기는 거의 석영맥암 석기들이며, 깨끗한 석영질 석기도 몇 개 있었다. 모두 39점 중 28점이 이며,...
  • 제천명오리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하였으며 소량의 맥석영(脈石英)ㆍ규암(珪岩)ㆍ천매암(千枚岩) 등, 이 지역에서 흔한 석재들을 사용하였다. 뗀석기는 몸돌[石核]석기와 격지[石片]석기로 나눌 수 있다. 는 주먹도끼 5점, 찍개 4점, 안팎날찍개 4점, 몸돌(르발루와식 포함) 10점 등이다....
  • 화순대전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쐐기모양의 좀돌날몸돌(micro-bladecore)석기가 있었다. 좀돌날의 연대는 동북아시아에서 2만∼1만 1000년 사이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수양개 유적의 절대연대가 약 1만 7000년 전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이 유적의 연대는 좀돌날...
  • 샘골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샘골의 얕은 대지 위에 있었던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1층) 밑에 부토층(腐土層, 2층), 모래진흙층(3ㆍ4층), 굳은진흙층(5층)으로 구분되었으며, 구석기시대의 뗀석기들은 3ㆍ4층에서 출토되었다. 뗀석기는 와 격지석기가 서로 반반이었으며, 석재(石材)는...

주제어사전(1)

  • / ─石器 [역사/선사시대사]

    격지를 떼어낸 원래의 몸돌로 만든 구석기시대의 석기. 찍개(choppers)·안팍날찍개(chopping―tools)와 주먹도끼(hand-axe)로 나누어진다. 찍개는 역석의 한 측면에서 1, 2조각의 소석편을 떼어내고 사용한 것이다. 안팎날찍개는 역석 양측면에서 소석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