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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돌널무덤” 에 대한 검색결과 10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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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85)

사전(8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硏究院, 1987) 遼寧朝陽十二台營子靑銅短劍墓(朱貴, 考古學報 1960年 1期) 寧城縣南山根石槨墓(遼寧省昭烏達盟文物工作站 外, 考古學報 1973年 3期) 부여 송국리 충남 부여군...
    이칭별칭석상분
  • 배천대아리석관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황해도 배천군 배천읍 대아리 의 써그네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 [개설] 1967년 4월 해주 력사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무덤 위에는 사질점토가 10∼40㎝ 가량 덮여 있었다.
  • 단양안동리석관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골은 늑골과 대퇴골의 파편으로 골격의 크기 및 형태의 복원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돌살촉‧장신옥의 부장품으로 미루어 성인남자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같이 네 벽을 각각 1매 판석으로 축조한 은 주로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돌살...
  • 안산선부동지석묘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소형 (石棺墓) 5기가 조사되었다. [내용] 지석묘의 구조형식은 탁자식(卓子式)과 개석식(蓋石式)이 있다. 하부구조의 형태는 대체로 탁자식은 판석(板石)을 세운 석관형(石棺形)을 취하나, 개석식은 지석(支石)을 가진 위석형(圍石形)‧석곽형(石槨形)...
  • 돌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들이 분포한다. 이것들은 벽과 뚜껑을 각각 몇 장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다. 서양에서도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시대에 화강암 또는 대리석으로 만든 구유식 돌널이 성행하여 측면을 부조로 장식하는 수법이 매우 발달하였다. 한반도의 은 청동기시대부터 등장하는데, 시베...
    이칭별칭석관(石棺)

주제어사전(23)

  • / 石棺墓 [역사/선사시대사]

    깬돌이나 판돌을 잇대어 널을 만들어 사용한 무덤. 석관묘의 형식은 매장시설에 사용된 석재의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 벽·뚜껑·바닥을 1매씩의 판석으로 조립한 전형적인 상형석관(箱形石棺)이다. 바닥은 대부분 판석을 사용하했다. 그러나

  • 돈화금구 / 敦化金溝-- [역사/선사시대사]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돈화시(敦化市) 흑석향(黑石鄕) 금구촌(金溝村)에 있는 청동기시대 . 흑석향 금구촌은 돈화시에서 북동쪽으로 32㎞쯤 떨어져 있는데, 마을 동남쪽 산골짜기 입구에는 금구하(金溝河, 黑石河)가 흐른다. 무덤은

  • 구성신시동석관묘 / 龜城新市洞石棺墓 [역사/선사시대사]

    평안북도 구성군 사기면 신시동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 정식으로 학술적인 발굴조사를 거친 것이 아니어서 유적의 성격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다. 다만 판석(板石)을 사용하여 축조한 단순형 이며, 그 내부에서 부장품으로 세형동검 1점과 흑요석ㆍ구

  • 단양안동리석관묘 / 丹陽安東里石棺墓 [역사/선사시대사]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안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석관묘 유적. 단양안동리석관묘의 출토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 의 연대는 청동기시대의 상한연대인 서기전 700년을 크게 상회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러한 은 그 뒤 수 매의 판석으로

  • 공주산의리유적 / 公州山儀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지와 저장구덩이 그리고 〔石棺墓〕이 있고, 경사면에는 백제시대의 고분이 자리한다. 1차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8기, 저장구덩이 41기, 28기, 독널무덤〔甕棺墓〕8기, 그리고 백제시대 돌방무덤〔石室墳〕40기와 독널무덤 4기가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