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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독향사” 에 대한 검색결과 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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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8)

사전(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들 군대에 대한 군량 보급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먼저 서울의 도성민(都城民)에게서 호(戶)별로 군량을 거두다가 소요가 발생하자 그 대신 충청도에 가 파견되었던 것이다. 당시 의 정식 직함은 독군향어사(督軍餉使御史)였다. 외에 관...
    이칭별칭독군향어사(督軍餉使御史)
  • 윤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었으며, 이듬해 정월 군량수송의 책임자인 (使)로 호남지방에 갔으나 돌아오기도 전에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므로 그해 6월 연원(連原)의 찰방(察訪)에 부임하였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춘추관기사관(春秋官記事官)을 겸하였다.
    이칭별칭 심원(深源)
  • 유경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관직으로 복귀하여 사간원의 정언ㆍ헌납을 지내다 (使)의 종사관(從事官)의 임무를 띠고 경상도에 파견되었다. 첨정 조존성(趙存性)의 탄핵을 받기도 했으나 사서ㆍ예조좌랑ㆍ병조정랑ㆍ사헌부지평 등의 청요직(淸要職 : 학식과 문벌이 높은 인물에게 주는 중요한 관...
    이칭별칭 선원(善元)

고서·고문서(5)

  • 68378 B068378 동도 東道 정치행정 慶尙道邑誌 固城縣邑誌 固城縣 壇廟 壇廟社稷壇(在縣西)文廟(在縣西)城隍壇(在縣南)厲祭壇(在縣北)忠烈祠(在縣南忠武公李舜臣額)葛川書院(在縣北康熙壬辰創建杏村先生文貞公李嵒墨齋先生盧㻶灌圃先生魚得江幷爲享)道山書院(在縣北天啓癸酉創建...
    출처전거慶尙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68379 B068379 동도 東道 정치행정 慶尙道邑誌 固城縣邑誌 固城縣 壇廟 ... 公李舜臣額)葛川書院(在縣北康熙壬辰創建杏村先生文貞公李嵒墨齋先生盧㻶灌圃先生魚得江幷爲享)道山書院(在縣北天啓癸酉創建贈吏曹判書崔均贈兵曹判書崔堈贈兵曹判書李達幷爲享)柳村書院(在縣北康熙己丑...
    출처전거慶尙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虞祭 六 【殤祭ㆍ再虞】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武王之尸,亦不可復得矣。故曰‘尸不必以孫也’。不得於孫,則凡卑幼者,可使也。【《大戴禮》曰:“無祿者稷饋,稷饋者無尸,無尸者厭也。”】 下子一 “旣饗,祭于苴。” 饗者,祝饗也。【下戊三】 明祝饗已前,與成喪之祭無一參差。旣,【其文宜少異】 佐食取黍稷,祭于苴,取膚祭,祭于苴。祝奠觶,祭于苴,...
    권차명喪禮四箋 卷三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虞祭 三 【饗ㆍ讀祝ㆍ迎尸】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以明水ㆍ涗齊,合之爲明齊,則〈士虞禮〉何嘗用明水哉? 下戊九 “卒。【句】 主人拜如初,哭,出,復位。” 卒,謂讀祝辭畢也。拜如初,謂如上畢,以醴祭茅之後,再拜稽首也。【下戊六】 復位,出戶外西面也。 下戊十 “男,男尸。女,女尸。必使異姓,不使賤者。” 【〈記〉文】 異姓,婦也。【鄭氏云】...
    권차명喪禮四箋 卷三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추안급국안 : 길운절(吉云節) 반역사건(2) [<추안급국안> 정서화 및 DB 기반 구축 | 전주대학교]
    生旣已稱得又爲解放何故獨捕矣身乎卞僉知囑戒祖使之傳言 于矣身曰權龍▣▣使貿穀不能備辨自前年逃躱初亦便好汝四人 往內廂具以此辭緣納招爲在如中不過受杖十五六一時得放是在果若稱 權龍捕捉臨時知機逃躱云則汝等受杖至死後已亦說道爲白去乙矣身 等以爲兩班豈不知而如是云云乎竟依其言納招爲白遣及到巡察使道 巡察...
    서명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권책001 | 자료문의전주대학교(연구책임자 : 변주승 교수)

주제어사전(1)

  • / 使 [정치·법제/법제·행정]

    서울의 도성민에게서 호별로 군량을 거두다가 소요가 발생하자 그 대신 충청도에 가 파견되었던 것이다. 외에 관향사 또한 충청·전라도에 파견되었으며, ·관향사의 명령은 군령에 준하였다. 는 이괄의 난이 평정되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