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도염원”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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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8)
사전(7)
- 도염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기와 그 기능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려 관제에 많은 영향을 준 당‧송의 관제 가운데서 고려와 같은 명칭을 가지고 있는 송나라의 도염원을 통하여 그 대강을 살펴볼 수 있다. 송나라에서는 삼사(三司)의 부속기관으로서 경사(...
- 의염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고려시대 소금의 저장 및 배급을 맡아보던 관서. [내용] 소금은 곡물과 더불어 중요한 식품의 하나로서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전매물로 정하여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소금의 생산지인 염분(鹽盆
- 구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고려시대의 특수관서. [내용] 원(院)이란 관해(官廨)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복원 외에도 도염원(都鹽院)ㆍ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특수관청은 대부분 그와 관련되는 상위의 정규관부가 파악되고 있으나, 구복원은 어느
- 민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民曹)로 고친 바 있었으나, 1308년 다시 민부로 고치면서 삼사(三司)‧군기감‧도염원(都鹽院)을 여기에 병합시켰다. 관원으로는 전서(典書), 그 아래 의랑(議郎)‧직랑(直郎)‧산랑(散郎)을 두었다. 이 민부는 뒤이어 판도사로 고쳤다가 1356년(공민왕 5) 문...
- 호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3인으로 늘려 모두 무신이 겸하도록 하였다. 1308년 충선왕이 다시 민부(民部)라 고치고, 삼사(三司)와 군기도염원(軍器都鹽院)을 여기에 병합하였다. 상서를 전서(典書)라 하여 3인으로 늘리고, 총랑을 의랑(議郎)으로, 정랑을 직랑으로, 좌랑을 산...이칭별칭민관
고서·고문서(1)
- 高麗鹽法論 【附見】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其利,國用何由可贍?今將內庫常積倉ㆍ都鹽院ㆍ安國社及諸宮院ㆍ內外寺社所有鹽盆,盡行入官。估價銀一斤六十四石,銀一兩四石,布一匹二石,以此爲例,令用鹽者,皆赴義鹽倉和買。郡縣人皆從本管官司,納布受鹽。若其私置鹽盆及私相貿易者,嚴行治罪。” 於是始令郡縣,發民爲鹽戶,又令營置鹽倉,民甚苦之。楊廣道鹽盆一...권차명經世遺表 卷十四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주제어사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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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염원 / 都鹽院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소금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기관. 문종 때 병과권무의 녹사 2인, 기사 2인을 두었다. 그 뒤 1309년(충선왕 1) 각염법의 시행으로 민부에 병합되었다. 고려의 도염원은 하나의 독립된 기관이었다. 고려의 도염원은 전매와는 관계없는 기관이었다. 충선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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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염창 / 義鹽倉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소금의 저장 및 배급을 맡아보던 관서. 고려는 초기부터 전매물로 정하여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국가에서는 공로가 특별히 큰 사람에게 염분을 하사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왕실과 귀족이 사리사욕으로 염분을 점탈하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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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복원 / 勾覆院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특수관서. 원(院)이란 관해를 의미. 구복원 외에도 도염원·동서대비원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특수관청은 대부분 그와 관련되는 상위의 정규관부가 파악되고 있으나, 구복원은 어느 관부와 관련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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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부 / 民部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호구·공부·전량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육부의 하나인 상서호부를 판도사로 고치고 1298년 다시 민조로 고친 바 있었으나, 1308년 다시 민부로 고치면서 삼사·군기감·도염원을 여기에 병합시켰다. 관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