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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도순문사” 에 대한 검색결과 25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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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50)

사전(18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사를 모두 관장하는 지방장관이 되었다. 서북면(西北面)의 는 평양윤(平壤尹)을 겸하고 동북면의 는 화령윤(和寧尹)을 겸하여 그 치사(治司)가 각각 평양부와 화령부에 있었다. 1389년(공양왕 1) 도절제사(都節制使)로 고쳐졌다. → 도절제사
  • (使)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使 도체찰사(都體察使), 체찰사(體察使) 순문사(巡問使) 관찰사(觀察使), 도절제사(都節制使) 정치행정/관직·관품 직역 대한민국 고려 후기〜조선 초기 고려 후기〜조선 초기 윤훈표 ...
    상위어도체찰사(都體察使), 체찰사(體察使) | 하위어순문사(巡問使) | 관련어관찰사(觀察使), 도절제사(都節制使)
  • 진변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는 창고를 내륙으로 옮겨 왜구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요청하는 등 해안 방어의 실태 및 그 문제점을 점검하는 일을 중요한 임무로 하였다. 주로 정3품관 이상의 고위 관원이 이에 임명되었는데, 순무사(巡撫使)ㆍ순문사(巡問使)ㆍ 등이 이를 겸하는 경우도 더러...
  • 도절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고려 후기 양계(兩界)지역에 파견되었던 외관직. [내용] 1389년(공양왕 1)에 (使)가 개정된 것이다. 정원은 동북면(東北面)과 서북면(西北面)에 각 1인씩이고, 품질(品秩)은 정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재추(宰...
  • 부원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들을 지휘하였다. 조금 뒤에는 각 도마다 도원수(都元帥)‧상원수‧부원수 각 1인씩 모두 3인의 원수가 분정되었는데, 도원수는 중앙에서 자기가 분정된 도의 시위군(侍衛軍)을 관할하였고, 부원수는 대개 각 도의 (使)를 겸하며 지방에서 직접 외적을 방어하였으며...

고서·고문서(64)

  • 26644 B026644 관음보 觀音保 정치행정 『高麗史』 44卷, 世家44 恭愍王7 恭愍王[甲寅]二十三年 秋七月 戊子 林密等白王曰 海中世修職貢垂五百載 近牧胡石迭里必思肖古禿不花觀音保等殺戮我使臣奴婢我百姓罪惡貫盈 今授爾節鉞往督諸軍剋期盡殲 又以門下評理柳淵爲楊廣道使知密...
    출처전거『高麗史』 44卷, 世家44 恭愍王7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安邊 宜川 文川 사회 遣宦者金龍奇于咸吉道.使馳報"安邊府.南川,雨水漲溢,漂沒五戶,溺死者三十."上命龍奇曰"安邊守,雖驟雨,使人急救之可也.且宜川·文川之守,已熟之穀宜急收穫,使亦宜督令收穫,皆不慮焉,而失其事機.汝往諭此意,取安邊·宜川·文川郡守之招以...
    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 39540 B039540 달산 達山 산악 高麗史 권133 列傳46 辛禑1 辛禑 四年 國 遂紿曰 高麗將拘汝 使懼逃歸 辛巳地震 賜裴克廉鞍馬衣酒 賞捕倭功⁄以地震宥二罪以下 信弘與倭賊戰于固城郡赤田浦不克遂還其國 以前密直副使黃淑卿爲東北面使兼和寧府尹 有李安仁者剃妻髮稱爲家婢賣之...
    출처전거高麗史 권133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425년 조흡(曺恰)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1425년(세종 7) 6월 6일에 조흡을 정헌대부 우군도총제 부총제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수취자인 조흡은 조선태종대의 무신으로, 경차관, 우군첨총제, 전라도절제사, 영길도, 평안도절제사, 도총제 등을 역임하였다. 1425년에 받은 고신 외에...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서울 송성문
  • 1406년 조흡(曺恰)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1406년(태종 6) 7월 13일에 조흡을 가선대부 좌군도총제 부동지총제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수취자인 조흡은 조선태종대의 무신으로, 경차관, 우군첨총제, 전라도절제사, 영길도, 평안도절제사, 도총제 등을 역임하였다. 1406년에 받은 고신...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주제어사전(9)

  • / 使 [정치·법제/법제·행정]

    는 평양윤(平壤尹)을 겸하고 동북면의 는 화령윤(和寧尹)을 겸하여 그 치사가 각각 평양부와 화령부에 있었다.

  • 도절제사 / 都節制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양계지역에 파견되었던 외관직. 1389년(공양왕 1)에 (使)가 개정된 것이다. 그 후 1390년(공양왕 2)부터는 양계에도 도관찰출척사를 두고 도절제사를 겸임하도록 하였으며, 고려가 멸망하기 3개월 전인 1392년 4월에 전국의 도관찰출척

  • 용성 / 龍城 [지리/인문지리]

    은 들판에 있다. 따라서 외적이 쳐들어올 때 이곳을 거치게 되어 1358년(공민왕 7) 왜구가 이곳을 침입하였고, 다음해에도 이곳을 비롯한 10여 현을 습격한 일이 있다. 1372년 양광(楊廣使) 조천보(趙天輔)가 이곳에서 왜구와 싸워 패한 적이 있다.

  • 평관식 / 平關式 [정치·법제/법제·행정]

    동등한 관사끼리 보내는 공문서 양식. 병조와 경·외군직과의 사이에는 특수한 규정이 있었다. 즉, 경관의 경우 병조와 진무소간에는 평관을 쓰되, 제위부장이 병조와 진무소에 대해서는 첩정을 썼다. 또한 외관의 경우 병마도절제사 겸한 각도 도관찰사나 는 병조에 대

  • 도진무 / 都鎭撫 [정치·법제/국방]

    고려말 조선초에 설치되었던 군직. 1389년(공양왕 1) 가 도절제사로 개칭된 이후 도절제사 밑에도 도진무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때 같은 도진무라도 양계 도절제사의 도진무는 정3품인 상호군 이상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도에서는 조선 세조초에 와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