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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대한천일은행” 에 대한 검색결과 50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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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45)

사전(2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仁川府史』(仁川府, 1933) 『매일신보(每日申報)』 (상업은행) 1899년 1월에 창설된 근대적 금융기관의 선구가 되는 민족계 은행. 1909년 사옥. ...
  •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상업은행 조선상업은행 朝鮮商業銀行 () 민병석(閔丙奭), 영친왕(英親王), 한성공동창조주식회사(漢城共同倉庫株式會社) 경제물가·화폐 집단 기구 대한민국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일제강점...
    동의어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 관련어민병석(閔丙奭), 영친왕(英親王), 한성공동창조주식회사(漢城共同倉庫株式會社)
  • 조선상업은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911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은행. [개설] ()을 개편해 1911년 1월에 설립한 은행이다. [연원 및 변천] 조선상업은행은 일제 강점 직후 민족계 은행의 약화와 말살을 도모하...
  • 민병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냈다. 관직 외 ()‧직조단포주식회사(織造緞布株式會社)‧농업회사 등의 조직과 경영에 참여하였다. 1905년과 1909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시찰하였다.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이칭별칭 경소(景召)| 시남(詩南), 의재(毅齋)
  • 한성상업회의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계 상인은 단결로써 대응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7월에 객주조합이 모체가 되어 한성에 거주하는 상인들이 가세하면서 강력한 민족상인단체의 결성을 기도해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해 7월에 열린 창립총회에서 의장에는 당시 ()의...

고서·고문서(5)

  • 채권 가차압(假差押) 신청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
    2_0174 채권 판결 경성이사청(京城理事廳) 채권 가차압(假差押) 신청에 관한 건 명치(明治) 41년 가제79호 3057 부이사관(副理事官) 하촌상덕(河村尙德) 주식회사 () 경성(京城) 중서(中署) 종로(鐘路)...
    재판기관경성이사청(京城理事廳) | 판결일자3057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 대금(貸金) 청구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
    주식회사 () 경성(京城) 중서(中署) 반도간태(飯島幹太), 변호사(辯護士) 진시본환(辰市本丸) 환강덕차랑(丸岡德次郞)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영등포(永登浦) 거주, 현재 주소불명(住所不明) 일본 피고는 원고에 대하여...
    재판기관경성이사청(京城理事廳) | 판결일자3153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 약속어음금(約束手形金) 청구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
    (鎌田裕) 서기 중원무(中原茂) 주식회사 () 한성(漢城) 중부(中部) 정만석계(丁萬石契) 1통 1호 대표자(代表者) 지배인(支配人) 원산희(遠山熙), 변호사(辯護士) 진시본환(辰市本丸) 정대영(丁大英) 한성(漢城) 서부(西部...
    재판기관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 민사제2부 | 판결일자1909년 06월 22일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 약속어음금(約束手形金) 청구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
    정구창(鄭求昌) 서기 전촌영수(田村榮樹), 번역관보(?譯官補) 송미무길(松尾茂吉), 서기 임광우(林光宇) 주식회사 () 경성(京城) 중서(中署) 장통방(長通坊) 정만석계(丁萬石契) 1통 1호 대표자(代表者) 지배인(支配人) 원산희(遠...
    재판기관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 민사제3부 | 판결일자1909년 06월 30일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 대금(貸金) 청구에 관한 건 [《한국 근대 민사판결문》의 DB화 및 국역(II) | 강릉원주대학교]
    일랑(深澤新一郞) 서기 좌산가동(佐山嘉同), 서기 대월무(大越務) 주식회사 () 경성(京城) 남부(南部) 대평방(大平坊) 홍문동(弘門洞) 동행랑계(東行廊契) 37통 2호 대표자(代表者) 지배인(支配人) 원산희(遠山熙) 청도삼길(淸...
    재판기관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 민사제1부 | 판결일자1909년 11월 25일 | 자료문의강릉원주대학교 이승일 교수

신문·잡지(15)

  • 株式會社 第二期營業報告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五,七壹九,五壹 右와如히相左가無홈 光武十一年八月 株式會社 銀行長代辦 김 基 永 取 締 役 尹 晶 錫 取 締 役 趙 鎭 泰 取 締 役 白 完 △ 支 配 人 飯泉幹太 前記各項을調査야其正確을保證홈 監 査 役 李 吉 善 監査役李吉善이滿期엿든바臨時株主總會에셔再...
    게재일1907년 8월 22일 | 기사분류광고
  • 株式會社 第二期營業報告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000,00 新築積立金 五,000,00 配當금(年一割) 貳,五七五,00 但新株一株에對야六拾貳戔五厘,舊株一株에對야壹圓貳拾五戔 後期繰越금 五,七壹九,五壹 右와如히相左가無홈 光武十一年八月 株式會社 銀行長代辦 김 基 永 取 締 役 尹 晶 錫 取 締 役 趙 鎭...
    게재일1907년 8월 23일 | 기사분류광고
  • 株式會社 第二期營業報告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000,00 新築積立金 五,000,00 配當금(年一割) 貳,五七五,00 但新株一株에對야六拾貳戔五厘, 舊株一株에對야壹圓貳拾五戔 後期繰越금 五,七壹九,五壹 右와如히相左가無홈 光武十一年八月 株式會社 銀行長代辦 김 基 永 取 締 役 尹 晶 錫 取 締 役 趙 鎭...
    게재일1907년 8월 24일 | 기사분류광고
  • (題旨] 株式會社 增資株式募集廣告 (廣告草稿)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所 大廣橋北川邊株式會社 一 株式을募集後應募數가追募株一千八百八十株에起過되면本銀行에셔决議處辦 一 其他未詳事請入所로來問事 光武十年六月 日 株式會社
    게재일1906년 6월 21일 | 기사분류광고
  • (題旨] 株式會社 增資株式募集廣告 (廣告草稿)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所 大廣橋北川邊株式會社 一 株式을募集後應募數가追募株一千八百八十株에起過되면本銀行에셔决議處辦 一 其他未詳事請入所로來問事 光武十年六月 日 株式會社
    게재일1906년 6월 20일 | 기사분류광고

주제어사전(5)

  • / [경제·산업/경제]

    1899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근대적 금융기관의 선구가 되는 민족계 은행.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래 일본 금융업계의 대한 진출이 뚜렷해지자, 우리나라의 지배층과 실업가들은 민족자본으로 은행을 설립하여 경제파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 사개치부법 / 四介治簿法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부터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우리 나라 고유의 독특한 회계처리법. 사개치부법은 네 가지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치부법을 말하는 것이다. 1920년대까지 사용되어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사개치부법으로 기록된 장부는 의 1899년부터 1906년까

  • 은행 / 銀行 [경제·산업/경제]

    한성은행, 1899년의 이 설립되었다. 최근에는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조흥은행과 상업은행이 그 명칭을 잃게 되었다.

  • 조선상업은행 / 朝鮮商業銀行 [역사/근대사]

    을 개편해 1911년 1월에 설립한 은행. 자본 구성은, 1917년에 자본금 57만 5000원이던 것이 군소은행의 흡수와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흡수, 통합되는 은행의 자본금이 가산되고 자체의 증자도 단행해 1929년 6월에는 공칭자본금 892만 5000원,

  • 증권 / 證券 [경제·산업/경제]

    주식이나 채권 등 재산적인 가치가 있는 문서. 한국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유가증권이 발행된 것은 1899년 이 주식회사 조직으로 설립된 때이며, 채권으로는 1905년 조선 정부가 '국고증권조례(國庫證券條例)'를 발포하고 200만 원(圓)의 단기국채를 발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