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대한올림픽위원회”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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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5)
사전(24)
- 대한올림픽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대한민국의 국가 올림픽위원회(Korean Olympic Committee). [설립목적]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정신을 국내에 보급, 발전시키고 한국의 체육 및 스포츠활동을 국제무대로 확산함으로써 스포츠를 통한 국익증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 민관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회장에 취임해 1971년까지 한국체육계를 선도했다. 또한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1966년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토대를 이루었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이칭별칭 소강(小崗)
- 김종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회 회장을 거쳐,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국민체육진흥공단 고문, 대한럭비풋볼협회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부회장, 1993년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1994년 2002년 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92년 한국체육...
- 정상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기여하였는데, 1948년 대한체육회 이사장,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제2‧3회 아시아경기대회 한국대표단 총감독, 1956년 제16회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총감독으로 활약하였다. 1957년에 다시 대한체육회...
- 이병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부회장을 겸임하고, 같은 해 한국팀이 처음 출전하는 런던올림픽대회에 한국선수단 총감독으로 참가하였다. 196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이칭별칭 소봉(蘇峯)
고서·고문서(1)
- 〈체육대사전〉 해제 [사전 편찬 정보 통합 DB 구축 | 고려대학교]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문교부아동도서 선전위원장, 한국아동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태신은 경향신문사 오랜 기간 동안 체육부 기자로서 활약하였고,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로서 체육행정에도 참여하였다. 감수위원으로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이자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대표표제어〈체육대사전〉 해제 | 편저자신태문, 김영일, 이태신 | 권수1권
주제어사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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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올림픽위원회 / 大韓─委員會 [예술·체육/체육]
대한민국의 국가 올림픽위원회(Korean Olympic Committee)였다가 대한체육회에 통합된 기구. 본래 대한체육회와는 별도의 규정을 제정하여 시행해왔으나 2009년 6월 대한체육회에 통합됨으로써 대한올림픽위원회의 기능이 대한체육회에 흡수되었다. 제반 업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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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식 / 閔寬植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관료. 1918년 개성에서 태어난 민관식은 경기고의 전신인 경성제일고보(1937)와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일본에 건너가 교토제국대학 농예화학과를 졸업했다. 6·25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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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 / 李丙學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1898∼1963. 본관은 전주(全州). 서울 출신.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덕원(德源)에서 독일계통의 성베네딕트수도원에서 2년간 수도하였다. 그 뒤 일본체육전문학교(지금의 일본체육대학)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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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 李性求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이성구는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YMCA에서 농구를 시작해서 1930년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여 농구부를 창설하고 주장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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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주 / 玄正柱 [예술·체육/체육]
대표팀의 선수로 출전하였다.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에도 중국대표단 임원으로 참가하였고, 1945년에는 상해축구협회 부회장직을 역임하였다. 광복과 함께 귀국, 1951년 이후 계속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지내면서 1952년 헬싱키올림픽대회, 1956년 멜버른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