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당후관”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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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2)
사전(30)
- 당후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의 관직. [내용] 문종 때 정7품으로 정하여 2인을 두었는데, 승선(承宣) 밑에서 왕명출납에 관한 실무를 맡아보았다. 당후관의 구체적인 직책은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
- 계의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또, 1298년 충선왕이 밀직사(密直司)를 광정원(光政院)으로 고칠 때 정7품 관직인 당후관(堂後官)을 계의관으로 고쳤다가, 뒤이어 광정원을 밀직사로 고칠 때 당후관으로 바꾸었다. 당후관은 사관(史官)에 해당되는 관직이었으므로 계의관도 사관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
- 役官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TD_E2_D_0077 役官 관직 麗制, 樞密院堂後官, 門下錄事, 權務, 人費, 白銀六七十斤, 穀貴, 各司下官, 私財, 官費 麗本史 D_04_04_48 대동운부군옥 4권 4장 48절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4권 4장 48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詐僞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TD_E2_D_0523 詐僞 관직 古法, 百官, 謝牒, 堂後官, 上將軍, 軍簿司, 奉翊, 典理司 趙浚書 D_16_04_20 대동운부군옥 16권 4장 20절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6권 4장 20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供億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TD_O0_D_0138 供億 음식 기타 直宿, 舍人, 門下錄事, 堂後官, 郞舍, 豐侈, 假貸, 補外, 斂民, 償債, 淸節 明宗, 張允文 麗史 D_20_03_31 대동운부군옥 20권 3장 31절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20권 3장 31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고서·고문서(2)
- 經史門8_堂后 [성호전서 정본화 사업 (II) | 청명문화재단]堂后 今人以政院注書爲堂后, 莫曉其義. 按, 《綱目》: “唐 憲宗元年, 堂后主書滑渙伏誅.” 胡三省《註》云: “卽今之堂後官也.” 渙與知樞密劉光琦相結, 李吉甫言其專恣, 請去之, 帝命闔中書四門搜掩, 得奸狀, 賜死, 則堂後者, 恐指中書省也. 其職司王言及署勅行下、宣旨勞問, 卽今...서명星湖先生僿說卷之二十五 | 저자이익(李瀷, 1681~1763) | 자료문의청명문화재단 태동고전연구소(www.chungmyung.org)
- 금사_金史125 列傳63 韓昉 韓昉 [국내외 고려시대 원전자료의 총집성과 종합 DB화―동아시아 자료간 상호대조와 연동을 통한 가치 증대― | 고려대학교]羣后四朝 周六年五服一朝 又六年王乃時巡 諸侯各朝于方岳 今天子方事西狩 則貴國當從朝會矣 高麗人無以對 乃曰 徐議之 昉曰 誓表朝會 一言決耳 於是高麗乃進誓表如約 昉乃還 宗幹大說曰 非卿誰能辦此 因謂執事者曰 自今出疆之使皆宜擇人 明年 加昭文舘直學士 兼堂後官 再加諫議大夫 遷翰林侍講學士...국가중국 | 서명금사 | 왕대인종(仁宗) 4
주제어사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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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후관 / 堂後官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중추원의 관직. 문종 때 정7품으로 정하여 2인을 두었는데, 승선(承宣) 밑에서 왕명출납에 관한 실무를 맡아보았다. 당후관의 구체적인 직책은 승지 밑에서 필사(筆寫), 즉 사관의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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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 / 注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승정원의 정7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고려시대 중추원의 당후관(堂後官)이 1400년(정종 2)에 승정원 당후관으로 되었다가 뒤에 주서로 개칭된 것이다. 승정원의 기록, 특히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담당하여 청요직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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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정사 / 口傳政事 [정치·법제/정치]
고려 후기 왕의 구두명령을 받아 정치하는 것을 뜻하는 말. ≪고려사≫에 의하면 1319년(충숙왕 6)에 왕이 이창에게 구전수직하여 당후관에 임명한 것이 그 시초라고 보고 있다. 구전정사는 본래 정상적인 절차는 아니며, 전정이 문란해지면서 왕이 구전으로 관리를 임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