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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노공필” 에 대한 검색결과 4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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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43)

사전(1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445(세종 27)∼1516(중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희량(希亮), 호는 국일재(菊逸齋). 할아버지는 동지돈영부사 물재(物載)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사신(思愼)이며, 어머니는 첨지(僉知) 경유...
    이칭별칭 희량(希亮)| 국일재(菊逸齋)|교성군(交城君)
  • TD_L14_D_4352 인물 登第, 淸顯, 短喪法, 盡禮, 杖配, 領中樞 甲子 交河 希亮, 思愼, 我光廟, 燕山 D_18_04_63 대동운부군옥 18권 4장 63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8권 4장 63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행정가관료/문신 인물 한국 조선 세조~중종 이기순 이범직 2009 희량(希亮) 국일재(菊逸齋) 교성부원군(交城府院君)...
  • 양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되었다. 1502년에 죄가 풀려 동지중추부사로 서용되고 겸세자우부빈객(兼世子右副賓客)이 되었다. 이듬해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한성부우윤에 이르렀다. 문장에 뛰어나고 재주가 있었으나 임사홍ㆍ유자광(柳子光)ㆍ() 등과 친하고, 임금의 뜻만 맞추려 하는 등...
    이칭별칭 가행(可行), 정보(楨父)| 대봉(大峰)|희지(稀枝)
  • 김방의고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489년(성종 20) 1월에 일어난 무고사건(誣告事件). [내용] 이 사건은 오위도총부 충좌위(忠佐衛)의 파적위(破敵衛)에 속해 있던 김방이 판서 이봉(李封)을 비롯하여 좌찬성 신준(申浚), 우찬성 (), 관찰사...

고서·고문서(24)

  • 48525 B048525 대정현감 大靜縣監 정치행정 燕山君日記 三年(1497) 十月 연산군일기_10310015_001 ○癸未 / 兵曹判書啓: “命賞濟州牧使。 臣謂, 此漂流人自來投求活耳, 非賊倭也, 固當不賞。 然必欲激勵邊將, 請賜鄕表裏。” 傳曰: “大靜縣監崔達河可...
    출처전거燕山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鄭文炯、、許琛、李堪議: “本道一應邊事, 已令李季仝措置, 突山事變, 不必別議處置。 但下諭李季仝, 善爲措置何如?” 李克墩議: “今觀本道前後邊報, 必是, 賊倭依泊近島, 伺候竊發。 洪任果能搜捕諸島 ...
    출처전거燕山君日記 | 지역분류전라남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放還本島, 使彼獷俗, 知我國大度不殺之仁, 似爲得也。” 金壽童、柳順汀、成希顔、、閔孝曾、金應箕、洪淑、朴說、洪景舟、申用漑等議: “京中囚倭, 是日本人, 固當放還, 對馬島 ...
    출처전거中宗實錄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92권, 성종 17년 6월 8일 신사 2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성종 17년 6월 8일 신사(1486) 1486 高嶺鎭 會寧 高嶺鎭 野人 행정 ○吏曹判書鄭蘭宗·參判·...
    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 31133 B031133 근도 近島 도서 근도(近島) 燕山君日記 三年(1497) 三月 연산군일기_10303012_006 順天府突山島等處, 賊倭竊發, 傷害人物, 刼奪衣糧。” 命政府、六曹及曾經政丞議之。 尹弼商、愼承善、魚世謙、韓致亨、盧思愼、鄭文炯、、許琛、李堪議: “本...
    출처전거燕山君日記 | 지역분류근도(近島)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2)

  • / [종교·철학/유학]

    1445(세종 27)∼1516(중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물재, 아버지는 사신, 어머니는 경유근의 딸이다. 1466년 춘시문과에 2등으로 급제, 성균관직강, 공조판서, 경기도관찰사, 의정부우참찬, 영돈녕부사,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14년 영

  • 양희지 / 楊熙止 [종교·철학/유학]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재주가 있었으나 임사홍·유자광· 등과 친하고, 임금의 뜻만 맞추려 하는 등 출처에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대봉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