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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수소” 에 대한 검색결과 6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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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65)

사전(1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시대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내탕(內帑)이라고도 하였다. 1430년(세종 12) 종래 궁중의 특수물품을 조달하던 내수별좌(內需別坐)를 정식관부로 개편하여 라 하였다. 여기에는 별도의
    이칭별칭내탕(內帑)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수사(內需司), 본궁(本宮) 정치행정/관청 집단 기구 대한민국 조선 이장우 [정의] 조선 건국 이후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고 궁궐 안에서 사용하는[內用] 미포(米...
    관련어내수사(內需司), 본궁(本宮)
  • 부전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서로 바꾸어 가며 임명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경정 때 종전의 ()를 내수사로 개편하면서 전수‧부전수 등의 관제가 정비되었다. 부전수는 내수사 부책임자로서 막대한 왕실재산을 관리하였기 때문에 품계에 비하여 비중있는 자리였다. ...
  • 내노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로 개편되었다. 는 1466년(세조 12) 관제 개혁 때 다시 내수사로 개편되었는데, 당시부터 다수의 소속 노비가 있었다. 노비안은 특히 선두안(宣頭案)이라 하여 도관(都官)‧가각고(架閣庫)‧내수사에 각각 1건씩 소장하고 있었으며...
  • 내수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本宮)에 사적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1423년(세종 5)에는 이러한 본궁의 사재(私財)를 관리하는 ()가 설치되었으며, 1466년(세조 12)에는 다시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본궁의 토지는 국가의 비호 아래 점차 확대되었다. 1445년 국용전제도(...

고서·고문서(46)

  • 71705 B071705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純祖 11年 3月 3日_022 ○以東萊府使尹魯東狀啓, 倭人等墳塚許其往事, 傳于李錫夏曰, 觀此狀辭, 館倭出館往來, 旣以前例許施云。 雖難據遮, 其所周旋看護, 專在別差, 益念擧行, 不害爲重關防之道, 以此分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6184 B006184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7年 10月 16日_011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上, 本, 而上年亦以凶荒, 只捧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6194 B006194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7年 10月 16日_011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上, 本, 而上年亦以凶荒, 只捧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6203 B006203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肅宗 7年 10月 16日_011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上, 本, 而上年亦以凶荒, 只捧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衛靈公 第三十三章(제삼십삼장) [성호전서 정본화 사업 | 한림대학교]
    되어 있다.”而棄之, 則不知有“大受”之器; 觀小人之道, 若於“大受”而棄之, 則不知有“小智”可觀. 言當器使也. 然行必由知, 知未必優行. 君子或迷於小知, 而却能明於大處, 所以人, 則時於“小知”處有可取, 而又未可全任, 況“大受”乎? 此一說也.
    서명논어질서 | 저자이익(李瀷, 1681~1763) | 자료문의청명문화재단 태동고전연구소(www.chungmyung.org)

주제어사전(3)

  • /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430년(세종 12) 종래 궁중의 특수물품을 조달하던 내수별좌를 정식관부로 개편하여 라 하였다. 특히 함경도에는 소속의 해척(海尺)·응사(鷹師) 300호가 지정되어 있었다. 는 그 사사

  • 부전수 / 副典需 [경제·산업/경제]

    ()를 내수사로 개편하면서 전수·부전수 등의 관제가 정비되었다. 부전수는 내수사 부책임자로서 막대한 왕실재산을 관리하였기 때문에 품계에 비하여 비중있는 자리였다.

  • 내수사전 / 內需司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수사에 소속된 토지. 내수사에서 관할하는 토지는 본래 본궁에 속한 토지 이외에도 내수사의 공해전(公廨田)이 있었다. 1449년에 가속군자전(假屬軍資田)에서 2,000결을 떼어 에서 수세하도록 했던 것이나, 1472년(성종 3)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