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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방고” 에 대한 검색결과 24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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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2)

사전(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뒤 1325년(충숙왕 12) 로 고쳤다가 1330년 의성창으로 다시 고쳤으며 1355년(공민왕 4) 로 환원하였다. 주요기능으로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였음은 왕실의 연회경비를 전담하였음에서 알 수 있으며, 태후궁과 공주궁의 상공(上供)도 전담하였다. 그...
    이칭별칭왕실재정|재정기관|운진창|부흥창|의성창|물가조절|빈민구제활동|제거별감
  • 방고감전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관부인데, 특히 () 및 내장택(內莊宅)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관원으로서는 내시참상(內侍參上)‧내시참외(內侍參外) 각 2인이다. 이 관부의 설치 이유는 1273년 내장택이 궤핍(匱乏 : 다 없어짐)되어 하루저녁 어반미(御飯米)를 대지 못하...
  • 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를 별도로 설치해 몰락한 무신들이 소유했던 토지는 물론이고 공사양전(公私良田)까지도 탈점하였다. 탈점된 토지는 주로 처간(處干)이라 불리는 농민을 시켜 경작했는데, 이들에게는 각종의 공부(貢賦)를 면제시켜주었다....
    이칭별칭대영창|대영고
  • 부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나 같은 해에 영조국‧잡작국‧직염국이 각각 장야서(掌冶署)‧도교서(都校署)‧도염서(都染署)로 개편됨과 동시에 폐지되었다. 1325년(충숙왕 12)에도 의성창‧덕천창이 ()‧덕천고로 바뀌면서 폐지되었으며, 공민왕 때에는 장흥고‧상만고의...
    이칭별칭부령|부제거
  • 종육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繕工寺)ㆍ사재시 등에 종6품의 승이 다시 두어지고, 상약국 시의와 내알사 직장은 혁파되었다. 1325년(충숙왕 12) 의성창ㆍ덕천창이 ()ㆍ덕천고로 개편되면서 부사가 혁파되었다가 1330년 다시 복구되었다. 이듬해에는 위위시ㆍ내부감의 승이...

고서·고문서(14)

  • 64945 B064945 도중 島中 도서 일반 承政院日記 孝宗 1年 3月 10日_014 ○又啓曰, 此逃倭事, 臣翼曾見本道狀啓中, 歷擧本倭及各人招辭, 似是分明我國之人。 幼時入島中, 壯大之後, 土親戚, 爲仍留不還之計, 逃匿如此, 以爲實然, 心其惻然, 故前日回啓, 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尹无咎宥還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or.kr/inLink?DCI=ITKC_MP_0597A_1600_000_0340_2015_035_XML 035 無心列鼎与鳴鍾,江北靑山自萬重。 草澤只堪隨麋鹿,鳳池須許集夔龍。 臨濠魚肆,小魯思登辨馬峰。 得醉便忘忘便臥,滿庭花木午陰濃。 自笑爰居得饗鍾,一身覊緤却重重。...
    권차명與猶堂全書補遺○竹欄遺蛻集 | 문체詩類|詩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納陳智等三百餘人皆執本府文榜前來投首乞下諸路有盗賊州軍准此施行從之 公奏本鎭屯營田畫一事件自中原失守諸重鎭多失惟公與羣盗屢戰自楊進之徒皆不能犯由是德安獨存牢城卒方壽等嘗謀亂公方會食有告變者公捕而詰之問從謀者幾壽曰一城之軍公之左右皆是今夕擧事矣公命誅壽餘不問一府皆服之 公以境内多官田荒田屯田之制...
    서명宋名臣言行錄 | 저자주희(朱熹), 이유무(李幼武) | 자료문의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 書爲近立言所以導事者詞灝噩竒甚其載上訓之略曰五教未訓五法亟下是曰暴民治用弗格以成上徳意先教後法之序旣進上曰卿文逼近經誥所増三十四字非不完也崔台符等願挂名其間耳旣命撰修都城記公又變其體以進詞尤宏放上益喜曰與大理記文頓異自成一家假龍圖閣直學士使大遼㑹御史獄簿責公唱和詩事甚急且辭上曰卿朕所自知遠行無...
    국가중국 | 서명계륵집 | 왕대숙종(肅宗)  7
  • 추안급국안 : 경오(1870, 고종 7) 진주(晉州) 죄인 김희국(金熙國) 등 심문기록 [<추안급국안> 정서화 및 DB 기반 구축 | 전주대학교]
    池洞或約會於江亭前後錢 財有請必施和應之迹若是狼籍厼雖喙長將何發 明自初情節一一直招亦推問敎是卧乎在亦 〇供朴晩源於矣身爲五寸戚而昨年至月分與朱哥 同爲問於晩源曰此人誰也答曰有相人之 術而居於畿湖而來往於此地者也云蓋鄕俗不宜 逐人不宿▣是戚分人之同行者故許其一宿而去 是白遣請錢許施云云自有實...
    서명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권책029 | 자료문의전주대학교(연구책임자 : 변주승 교수)

주제어사전(2)

  • / [경제·산업/경제]

    고려 후기의 재정기관. 왕실의 재정을 관장하던 것으로 보이는 관서이다. 관제개혁을 시도한 충선왕이 광흥창·풍저창·덕천고의 개편과 아울러 종래의 운진창(雲臻倉)과 부흥창(富興倉)을 병합, 의성창(義成倉)을 설치하였다. 그 뒤 1325년(충숙왕 12) 로 고쳤다가

  • 방고감전별감 / 房庫監傳別監 [정치·법제/법제·행정]

    1273년(원종 14)에 설치된 전지공안과 별고노비의 천적을 담당하던 기관. 정규의 중추관부로서 노비의 부적(장부와 문서)과 결송을 관장하는 도관의 관련 관부인데, 특히 () 및 내장택(內莊宅)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관원으로서는 내시참상(內侍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