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김직재”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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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72)
사전(59)
- 김직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백함(白緘)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 태경(晉陵君泰慶)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사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김직재의 옥으로 이어지는 대ㆍ소북파 사이의 정쟁(政爭)에 당시 불평객이었던 이들 부자가...
- 김직재사(金直哉事)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김직재사 김직재사 金直哉事 김직재의 옥(獄) 대북파(大北派), 소북파(小北派), 광해군(光海君), 신율(申慄), 김경립(金景立) 정치정치운영/정쟁·정론 사건 조선 신병주 [정의]...동의어김직재의 옥(獄) | 관련어대북파(大北派), 소북파(小北派), 광해군(光海君), 신율(申慄), 김경립(金景立)
- 김직재의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생되자, 희생된 흠의 원수를 갚기 위해 흠의 아들인 직재가 아버지 상중(喪中)에 종군해 주육(酒肉)을 먹은 사실 때문에 대간의 탄핵을 받아 실직한 과거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김직재와 김백함 부자는 물론, 직재의 사위 황보 신(皇...
- 이형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년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김직재(金直哉) 등이, 순화군(順和君)에게 입양한 그의 아들 진릉군 태경(晉陵君泰慶)을 받들어 반역을 꾀하려 했다는, 이른바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신원되었다. ...이칭별칭 수원(壽元)
- 형난공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 광해군 때 김직재(金直哉)의 옥을 다스리는 데 공이 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내용] 612년(광해군 4) 2월 봉산군수 신율(申慄) 등이 당시 황해도에 있던 김직재‧백함(百緘) 부자가 역모를 주동하였...
고서·고문서(13)
- 강음현(江陰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4784 B014784 강음현 江陰縣 정치행정 光海君日記 四年(1612) 2월 광해군일기_10402015_007 ○(閔德男啓曰: “伏見江陰縣監書狀, 罪人金直哉, 已爲捕捉, 移送於海州云。 前日下去都事、宣傳官等, 必爲追往拿來, 故不爲更遣他都事之意, 敢啓。” 傳曰: “知...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대정(大靜)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42787 B042787 대정 大靜 정치행정 光海君日記 四年(1612) 10월 광해군일기_10410012_001 ○壬子十月十二日壬申,以金直哉妻子定配入啓, 傳曰: “兄弟同配一邑, 似爲不妥。 詳察改定。” 禁府啓曰: “我國絶島,濟州、旌義、大靜、珍島、巨濟、南海等六邑。 兄弟...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교동현(喬桐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28571 B028571 교동현 喬桐縣 정치행정 宣祖實錄 四十年(1607) 閏六月 선조실록_14006106_003 ○憲府啓曰: “前學錄金直哉悖惡之狀, 前日罪案俱在, 今不敢仰陳。 得齒人列亦不可, 況復置於衣冠之列乎? 請收職牒還給之命, 以正人紀。 喬桐縣監申慶昌, 爲人悖妄,...출처전거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問: “鄭經世,尙州人, 何以云居東萊也?”彭錫曰: “僧言如此矣。” “金直哉與經世相知乎?” 對曰: “經世往來直哉家, 則不知也。 但直哉往來經世家云。” “陜川、東萊宰相何人耶?”彭錫云: “不知矣。” 更問之, 則陜川則鄭仁弘,東萊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只聞其語矣。” 又問: “汝以人臣, 聞此言凶逆, 則何不卽時告官?” 對曰: “其僧壯士也。 雖十人, 決不能捉縛。 身以單人, 力難捕捉。 告官而不得其僧, 則身當反坐, 所以不告也。” 問: “鄭經世,尙州人, 何以云居東萊也?”彭錫曰: “僧言如此矣。” “金直哉與經世相知乎?” 對曰: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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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재 / 金直哉 [종교·철학/유학]
?∼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흠이다. 선조 때 성균관학록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광해군 때는 다시 늙은 어머니를 학대하였다 하여 돌려받았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백함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 태경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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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난공신 / 亨難功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광해군 때 김직재의 옥을 다스리는 데 공이 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612년(광해군 4) 2월 봉산군수 신율 등이 당시 황해도에 있던 김직재·백함 부자가 역모를 주동하였다고 무고하여 일어난 사건. 처음에는 무려 170명이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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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 / 黃裳 [종교·철학/유학]
1591(선조 24)∼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정욱 증손, 할아버지는 혁이다. 1612년(광해군 4)에 일어난 김직재의 옥사에 역모죄로 할아버지와 같이 나이 22세에 처형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원사하였음이 밝혀져 지평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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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록 / 壬子錄 [문학/고전산문]
조선 광해군 때 유진(柳袗)이 지은 일록류(日錄類)의 산문. 필사본. 지은이는 유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이다. 1612년(광해군 4) 임자 정월에 발단된 해서(海西)의 역옥사건인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입고 하회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