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전체] “김석황” 에 대한 검색결과 1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연구성과물(15)

사전(1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894(고종 31)∼1950. 독립운동가. [내용]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윤황(潤璜)‧석황(錫潢). 황해도 봉산 출생. 1919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때 2‧8독립운동에 막후 주요인물로 회의참석 연락, 동지규합,...
    이칭별칭윤황(潤璜)|석황(錫潢)
  • 의용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의 중재로 결사보국을 맹세하고 그곳의 각종 독립운동단체를 통합, 의용단을 조직하였으며, 단장에 홍석운, 총무에 여행렬, 군무(軍務)에 김송혁, 재무에 임승업(林承業), 서기에 이기영(李起榮) 등을 각각 선임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수안ㆍ강동ㆍ중...
  • 대한민국청년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호(任在鎬), 서무부장 (), 재무부장 민제호(閔濟鎬), 출판부장 주요한(朱耀翰), 교통부장 이송명(李松明), 토론부장 박헌양(朴憲陽), 운동부장 박천병(朴天秉) 등 150여명의 회원으로 조직되었으며, 그 가운데 96명은 상해 거주자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 김병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895∼1938. 독립운동가. [내용] 평안남도 대동 출신. 이명은 병도(炳道), 병조(炳朝), 이준열(李峻烈), 영호(永浩). 1919년?평남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 1920년?평양에서 ()‧김동선(金東宣)...
    이칭별칭병도(炳道)|병조(炳朝)|영호(永浩)|이준열(李峻烈)
  • 표영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896∼? 독립운동가. [내용] 일명 최승환(崔昇煥). 평안남도 강동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특파원 ()과 평양 기홀병원(...
    이칭별칭최승환(崔昇煥)

고서·고문서(1)

  • 제10회 장승포읍회 회의록(第十回長承浦邑會會議錄) [일제강점기 '지방의회 회의록'의 수집·번역·해제·DB화 | 동국대학교]
    律(12번) 河本文政(부읍장), 大本炳基(서기), (서기)   井上薰(장승포읍장), 陳山聖鳳(5번), 河本啓秀(9번) 1호 경방단원 급여규정 제정 건, 2호 장승포 특별세규칙 중 개정 건, 3호 1940년도 장승포읍 세입출 제2회 추가경정예산 건,...
    대표표제어제10회 장승포읍회 회의록(第十回長承浦邑會會議錄) | 건명장승포읍회회의록 | 회의년월1940년 12월 | 회의일07일 | 키워드지방의회, 회의록, 경방단

신문·잡지(1)

  • 민세안재홍전집 : 左翼要人殺害도計劃 [民世 安在鴻全集 資料集成 및 DB化 事業 | 중앙대학교]
    1648 1948 3 9 1 1 左翼要人殺害도計劃 辛日俊陳述書 신문 동아일보 2면 7단 기사 사회 간접자료 선집외 辛日俊, 張德秀, 暗殺事件, 金九, , 趙尙恒, 孫禎秀, 大韓革命團 A19480309동...
    출처형태신문 | 자료문의중앙대학교(연구책임자 : 김인식 교수)

주제어사전(3)

  • / [역사/근대사]

    1894-1950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윤황(潤璜). 황해도 봉산 출생. 1919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때 2·8독립운동에 막후 주요인물로 회의참석 연락, 동지규합, 문서작성을 지원해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훈방되자 곧 상해

  • 표영준 / 表永俊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승환(崔昇煥). 평안남도 강동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특파원 ()과 평양 기홀병원(紀笏病院: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

  • 홍석운 / 洪錫雲 [역사/근대사]

    1876-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중화(中和)이다. 1920년 평양에 위치한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임시 정부에서 파견한 ()과 접선한 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지령에 따라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