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우만”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5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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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532)
사전(168)
- 기우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사』 1‧7‧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6)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기우만 서한 1846(헌종 12)∼1916.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칭별칭 회일(會一)| 송사(松沙)|기참봉
- 양회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1884(고종 21)∼1961. 조선 말기의 학자. [내용]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아버지는 재덕(在德)이고,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 평환(平煥)의 딸이며,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3...이칭별칭 원숙(元淑)| 정재(定齋)
- 공학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시문을 익혔으며, 1898년 기우만(奇宇萬)을 찾아가 학문을 청하기도 하였다. 1905년 일본의 한반도 침탈이 본격화되자 공자의 성령(聖靈)을 모시는 성묘(聖廟)를 집근처에 세워 사산(泗山)이라 이름하고 제향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두문불출...이칭별칭 도경(道卿)| 도봉(道峰)
- 설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德淳)의 딸이다.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광선(高光善)ㆍ박인섭(朴寅燮) 등과 교유하였다. 1895년(고종 32)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기우만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장성ㆍ나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웠다. 1910년 국권강탈을 당하자 아...이칭별칭 도홍(道弘)| 남파(南坡), 율재(栗齋)
- 귤은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 말기의 유학자 김유(金瀏)의 시문집. [내용] 4권 2책. 목활자본. 1901년 종제 준(濬)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 책의 이면표지에는 ‘유고(遺稿)’라고 되어 있으며, 권두에 기우만(奇宇萬)의 서문이 있다. 권1‧2에...
논문(1)
- 14_송사 기우만의 심학(心學)과 부정척사(扶正斥邪) [심설논쟁 아카이브 구축 -자료의 수집‧발굴, 교감‧표점, 해제, 해석- | 한국전통문화대학교]저자 : 김근호 | 게재정보 : 한국철학논집
고서·고문서(362)
- 기우만(奇宇萬) 서간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기우만이 제자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제자가 상례(喪禮)에 대해서 물어온 것에 대해 답하고 있는 내용이다. 즉 아버지의 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상을 만났을 때개재(改題)하는 것은 어머니의 상을 마친 후길재(吉祭)때를 기다려서정침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장성 고산서원
- 기우만(奇宇萬) 서간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기우만이 오강 정성하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이다. 뜻밖의 편지와 게다가 좋은 시까지 보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은 공부하러 오는 서너 명의 소년들이 있어서 근심과 적막함을 깨뜨려준다고 근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어서 춘삼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번 찾아와...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장성 고산서원
- 기우만(奇宇萬) 서간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기우만이 종족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농촌일이 바쁘다는 사실과 종손을 보게 된 기쁨, 그리고 자신의 금년 농사는 논 50두락이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가을에도 거둘 것이 없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고 있다. 이밖에도 족보 만드는 일이 절반이 지났는데도 돈이 걷히지 않...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장성 고산서원
- 1915년 기우만(奇宇萬) 서간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1915년9월 6일에 기우만이 보낸 편지이다. 앞의 편지도 답장을 못했는데 뒤의 편지가 또 왔으니, 이것은 우체국이 시행되었기 때문이고, 하물며 곡성의 오지리까지도 우체편이 있다고 하니 기이한 일이며, 계속 이런 일이 있으면 다른 나라의 기이한 소식도 혹 듣게 될지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장성 고산서원
- 1893년 기우만(奇宇萬) 서간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1단계) | 전북대학교]1893년(고종30)11월 17일에 기우만이 하남에 사는 종제 기우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번 3일의 정사에서 숙부님이 교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과 자신은 이사할 날이 가까워져서 모든 일이 어수선하며, 스무 집을 이끌고 왔다갔다하는 것이 매우 번거로워서...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장성 고산서원
신문·잡지(1)
- 有志折簡 (續)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此款之惟重與他特殊不可不深思良圖而推度本國內通貨之現狀公私巨細無有不任掌彼手則彼之於此事以死賭存使不得善圖不見是賭也我之天一大韓兩銀行初不必擧論若或有任托西人銀行則只有英之滙豊美之大是羅而已彼兩金庫名雖異國實彼之半主張兌換出納之機關而該資本各不過數十餘萬也且非國立只系商賈私設則以其幾于萬之巨欵任諸...게재일1907년 6월 4일 | 기사분류기타
주제어사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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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 / 奇宇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846∼1916).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1906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후 1908년에 거사를 계획했으나, 고종이 퇴위당하자 해산하고 은둔생활을 했다. 저서에는《송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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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준 / 姜基準 [종교·철학/유학]
1876-1954.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낙언(樂彦)이고, 호는 난파(蘭坡)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다. 호남의 거유(巨儒) 참판(參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써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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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은문집 / 歸隱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전기 학자 오계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4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914년 후손 병묵(炳默)·연보(然輔)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장석신(張錫藎)·기우만(奇宇萬)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송호곤(宋鎬坤) 등 세 사람의 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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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유고 / 大谷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석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2년에 간행한 시문집. 1902년 김석구의 동문 기우만(奇宇萬)·정재규(鄭載圭) 등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두에 최익현(崔益鉉)의 서문과 권말에 최숙민(崔琡民)·김창우(金昌宇)의 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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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고산서원 / 長城高山書院 [교육/교육]
주향(主享)되었으며, 김녹휴(金錄休)·조의곤(曺毅坤)·정재규(鄭載圭)·기우만(奇宇萬)·김석구(金錫龜)·정의림(鄭義林)·이최선(李最善) 등의 위패가 배향(配享)되었다. 음력 3월, 9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