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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기격구” 에 대한 검색결과 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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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8)

사전(7)

  • 마보무예(馬步武藝)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다가 세종 때 격구(擊毬)를 무과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면서, 마보무예에 격구가 포함되었다. 다만 『경국대전』에는 마보무예라는 표현을 대신하여 기보격구(騎步擊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러한 표현은 ()와 보격구(步擊毬)가 아니라 기마무예와 보사무예, 그리...
    상위어무예 | 관련어기마무예, 보사
  • 무과전시(武科殿試)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무과전시 무과전시 武科殿試 과거(科擧), 무과(武科) 과거삼층법(科擧三層法), 『무경칠서(武經七書)』, (), 보격구(步擊毬) 정치인사/선발 법제 정책 대한민국 조선 조선 윤훈표 ...
    상위어과거(科擧), 무과(武科) | 관련어과거삼층법(科擧三層法), 『무경칠서(武經七書)』, 기격구(騎擊毬), 보격구(步擊毬)
  • 무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 문관 1인과 무관 2인이, 감시관에는 양사(兩司)에서 각각 1인씩이 임명되었다. 전시는 처음에 ()‧보격구(步擊毬)로 시험했으나, 뒤에는 11기(技) 중의 1기 내지 2기로써 등급을 정해 갑과 3인, 을과 5인, 병과 20인 등 모두 28인을 선발하였다....
  • 전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에 앉은 뒤 독권관이 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연산군 이후로는 시험 하루 전에 출제하도록 바뀌었다. 시험보는 날에는 문과전시의(文科殿試儀)를 거행한 뒤 시험으로 들어갔다. 무과전시의 고시 과목은 처음에는 ()‧보격구(步擊毬)였으나 뒤에는 11기(技) 중...
  • 격구(擊毬)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필수적인 무예로 등장하였다. 격구가 기마무예를 연마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는 종래 단체전에 의한 경 이외에 개인이 혼자 행하는 시험용 격구의 출현을 가져왔다. 격구는 서양의 폴로와 비슷하지만, 채 막대기의 끝이 숟가락 모양의 나무로 치는 것이 아니...
    상위어기마무예(騎馬武藝), 마상무예(馬上武藝), 마보무예(馬步武藝) | 하위어장치기 | 동의어타구(打毬), 마구(馬毬), 기보격구(騎步擊毬), 농장희(弄杖戱) | 관련어격구장(擊毬場), 구장(毬場), 장시(杖匙), 구문(毬門)

고서·고문서(1)

  • 過庭錄 卷三 [『연암집』 정본 사업 | 단국대학교]
    欲據此爲禁葬之證. 先君曰: “此不可復以人理爭也.” 不暇訟辨, 而急占他山, 將移奉焉. 擇日已出, 宵, 漢雋聞之, 又急誘其宗中惡少之貧無賴者, 及其未遷, 而更掘, 竟至露柩焉. 先君曰: “已甚哉! 初認其專欲奪山地也. 今其行事到底凶毒, 此必有伏莽之戎, 不可說也.” 遂移窆於...
    대표표제어過庭錄 卷三 | 목차過庭錄

주제어사전(1)

  • / [예술·체육/체육]

    말을 타고 하는 격구(擊毬). 경기와 시험으로서의 형태 두 가지가 있다. 본 법전에 규정된 것은 시험을 치루기 위한 형태로서 조선 후기에도 이어져 정조(正祖) 때 24반무예의 하나로 정해졌으며,『무예도보통지』에도 그 내용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