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금군삼청”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1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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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9)
사전(9)
- 금군삼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해 군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분리 독립되어 있던 내삼청을 하나로 묶어 600여인의 군사를 좌ㆍ우별장(左右別將)이 통솔하는 체제를 갖추고 이어서 정원을 1,000인으로 늘렸으나 효종이 죽은 뒤 쇠퇴하였다. 금군삼청 또는 금군청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 쇠퇴한 내삼청을...
- 금군삼청 [한국학영문용어용례정보 구축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 전기 왕실의 수위와 신변 보호를 맡아보던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3청의 합칭. 1755년에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됨.정의조선 전기 왕실의 수위와 신변 보호를 맡아보던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3청의 합칭. 1755년에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됨.[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 문광부표기Geumgun Samcheong | MR표기Kŭmgun Samch’ŏng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용어 용례 연구팀(연구책임자 : 한형조 교수)
- 금군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장 3인, 겸사복장ㆍ우림위장 각 2인을 두었다. 이들은 조선 전기에는 내장(內將)이라 호칭하였고, 종2품의 관직으로서 모두 다른 관직에 있는 사람이 겸직하였다. 독립하여 존속해온 금군삼위인 내삼청(內三廳)은 조선 후기에는 하나로 통합되어 금군청 또는 금군삼청(禁...
- 금군별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 후기 금군청(禁軍廳) 소속의 종2품 관직. [내용] 조선시대 왕의 친병으로 금군삼청(禁軍三廳) 또는 내삼청(內三廳)이라 하여, 겸사복(兼司僕)ㆍ내금위(內禁衛)ㆍ우림위(羽林衛) 등이 있어 그에는 각각 종2품직 장(將) 3인씩을 두었으...
- 금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겸사복‧우림위 등 삼청(三廳)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이들을 합칭, 금군삼청, 또는 내삼청(內三廳)이라 하여 왕의 친병으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금군의 수는 늘어 1528년(중종 23)에는 600인을 넘었다. 때문에 그 가운데 100여...
주제어사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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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군삼청 / 禁軍三廳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금군인 내금위·겸사복·우림위를 합쳐서 부르던 칭호.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공신세력에 의해 호위청이 설치되어 본래의 금군인 내삼청은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금군삼청이 1755년(영조 31)에는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되었으나, 그 조직이나 기능에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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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군별장 / 禁軍別將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금군청 소속의 종2품 관직. 조선시대 왕의 친병으로 금군삼청 또는 내삼청이라 하였다. 1666년(현종 7)에는 금군청을 설치하고 내삼청을 통합. 1755년(영조 31) 금군청을 용호영으로 개칭한 뒤에도 별장만은 금군별장이라 하였다. 각 군문의 중군(종2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