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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구군복” 에 대한 검색결과 40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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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7)

사전(2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군복. [내용] 조선시대의 군복에는 융복(戎服) 외에 이 있었는데, 이 것은 개주(介胄)의 속옷으로 무관의 대례복이었다. 그 구성은 전립(戰笠, 氈笠)‧이엄(耳掩)‧협수(狹袖, 동다리)‧전복(戰服)‧...
    연계항목구군복(具軍服)
  • [한국학영문용어용례정보 구축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군복.
    정의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군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광부표기gugunbok | MR표기kugunbok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용어 용례 연구팀(연구책임자 : 한형조 교수)
  • 전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시대 차림에서 전복(戰服) 위에 혹은 광대(廣帶) 위에 매던 띠. [내용] 천을 바이어스(bias)로 너비 14∼15㎝, 길이 3.5∼4m의 직사각형으로 마름질하여 나선형으로 박아 좁고 긴 자루모양으로 만든다. 올이 바이어스방...
  • 동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형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갑옷 아닌 융복(戎服)이나 ()에도 동개를 메었다. 『증보한국복식사연구(增補韓國服飾史硏究)』(김동욱, 아세아문화사, 1979) 동개 / 세...
    이칭별칭고건|동아|궁시대
  • 관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군복장규칙 陸軍服裝規則>이 제정되어 ()은 구미식 군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1899년에는 외교관의 복장이 서양화되었으며, 이듬해 <문관대례복제식 文官大禮服制式>을 정하여 구미식 관복으로 바뀌었는데, 이로써 조선시대 관복제도는 모습을 감추고 서양화하게 되었다....
    연계항목관복(관복)

고서·고문서(7)

  • 一提學鄭民始, 檢校直提學徐鼎修, 檢校直閣尹行任·南公轍, 以次隨駕。 上, 乘輿登八達山, 歷覽城址形便訖。 上曰, 壯勇衛挾輦, 禁衛大將率壯營及該營京鄕步軍?飯, 未明, 從便先往果川宿所歇脚, 壯營鄕軍一哨, 直自行宮解送, 壯勇外使, 率本府軍兵, 札住於貳衙前路, 待還宮, 解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39425 B039425 달산 達山 산악 承政院日記 正祖 18年 1月 15日_013 直提學徐鼎修, 檢校直閣尹行任·南公轍, 以次隨駕。 上, 乘輿登八達山, 歷覽城址形便訖。 上曰, 壯勇衛挾輦, 禁衛大將率壯營及該營京鄕步軍?飯, 未明, 從便先往果川宿所歇脚, 壯營鄕軍一哨,...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겨드랑이에 대는 딴 폭)도 좁아졌는데 이것을 소례복(小禮服)이라 하였으며, 여기에 흉배를 달아 대례복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한편, 1895년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이 제정되어 ()은 구미식 군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1899년에는 외교관의 복장이 서양...
    자료명옛날 대관의 승교 | 발행처京城日之出商行 | 자료문의동아대학교 신동규 교수
  • 君視臣如手足臣視君如腹心章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於郊。未絶者,言爵祿尚有列於朝,出入有詔於國。凡畿內之民,服齊衰三月。”】 引證 〈檀弓〉曰:“穆公問於子思曰,‘爲舊君反服,古與?’ 子思曰,‘古之君子,進人以禮,退人以禮。故有舊君反服之禮也。今之君子,進人若將加諸膝,退人若將隊諸淵,毋爲戎首,不亦善乎?又何反服之禮之有?’” 顧曰:“爲者...
    권차명孟子要義 卷一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臣僕 三 【家臣爲國君】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or.kr/inLink?DCI=ITKC_MP_0597A_0920_010_0070_2015_020_XML 020 〈雜記〉曰:“違諸侯之大夫,不反服,違大夫之諸侯,不反服。” ○鄭曰:“其君尊卑異也。去諸侯,仕諸侯,去大夫,仕大夫,乃得爲。” 【孔云:“自尊適卑,不可服前之尊...
    권차명喪禮四箋 卷十六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신문·잡지(1)

  • 조선출판경찰월보 103호 송애선생문집속권 [일제강점기 제국과 식민지의 출판 검열 자료 DB 구축 | 선문대학교]
    지. 1. 가장략(家狀略) 甲甲拜執義時, 有然遠之變, 爲奔問入謝 李自成擧兵陷皇都, 皇帝自焚崩, 我國聞訃有日而, 無腹喪之議, 府君肅謝仍啓日, 我國臣事大明三百年矣, 皇帝陟方, 豈可無服, 况禮爲可據而行也.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일제강점기 제국과 식민지의 출...
    대표표제어조선출판경찰월보 103호 송애선생문집속권 | 출판물명송애선생문집속권(松崖先生文集續卷)

주제어사전(3)

  • /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군복. 조선시대의 군복에는 융복 외에 이 있었는데, 이것은 개주의 속옷으로 무관의 대례복이었다. 그 구성은 전립·이엄·협수·전복·전대·목화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병부를 차고 동개·환도·등채를 갖추었다. 무관 최고의 복식차림으로 왕의

  • 동개 / 筒箇 [생활/의생활]

    메고 겨드랑이에서 묶게 되어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안악3호분(安岳三號墳)의 행렬도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상고시대부터 있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까지 그 형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갑옷 아닌 융복(戎服)이나 ()에도 동개를 메었다.

  • 백관복 / 百官服 [생활/의생활]

    밖에 정복은 아니나, 항시 공무를 볼 때에 착용하는 시복,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될 때, 또는 국난을 당했을 때에 착용하는 융복 또는 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