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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관압사” 에 대한 검색결과 3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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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8)

사전(2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譯學)출신 중에서 선정하기도 하였다. 이 는 청나라와의 외교관계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인조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명외교관계에서만 존속하였던 사행이라고 믿어진다. 『태조실록(太祖實錄)』 ...
  • (使)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使 관송사(管送使), 진헌사(進獻使), 주청사(奏請使), 주문사(奏聞使), 동지사(冬至使) 정치외교/사행 직역 대한민국, 중국 조선 태조~광해군 박성주 [정의...
    관련어관송사(管送使), 진헌사(進獻使), 주청사(奏請使), 주문사(奏聞使), 동지사(冬至使)
  • 근대신어 : 통역관(通譯官)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譯官 역관 今以譯官張有誠爲使.(成宗實錄 5년 8월 26일) 이제 역관(譯官) 장유성(張有誠)을 (使)로 삼았는데 직업
    출전婦幼獨習 | 계통분류 [정치경제] 직업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 근대신어 : 통역관(通譯官)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使.(成宗實錄 5년 8월 26일) 이제 역관(譯官) 장유성(張有誠)을 (使)로 삼았는데 직업
    출전대한매일신보 | 계통분류 [정치경제] 직업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 근대신어 : 번역관(번역관)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今以譯官張有誠爲使.(成宗實錄 5년 8월 26일) 이제 역관(譯官) 장유성(張有誠)을 (使)로 삼았는데 직업 사회관계 인문학
    출전독립신문 | 계통분류 [정치경제] 직업 [사회생활] 사회관계 [과학지식] 인문학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고서·고문서(9)

  • 류중영(柳仲郢)일기 [경상도 일기자료 목록 및 해제 | 경북대학교]
    유천파 농학당 한국국학진흥원 20498 · · 류중영(柳仲郢)이 1562년에 공마(貢馬) (使)로 북경에 갔다온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1562년 8월 1일~1563년 1월 26일 1562년 8월 1일 출발. 8월 27일 의주 도착. 9월...
  • 95154 B095154 본도 本島 도서 일반 世宗實錄 八年(1426) 五月 세종실록_10805021_002 ○石見州賜物使大護軍李藝, 復命啓曰: “宗貞盛, 備禮迎命, 受賜賻, 待臣等甚厚, 出餞于四十五里訓羅串, 謂臣曰: ‘臣當繼先父貞茂之志, 專心向化, 近因不在本島七...
    출처전거世宗實錄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95149 B095149 본도 本島 도서 일반 世宗實錄 八年(1426) 二月 세종실록_10802012_001 ○丙子 / 石見州、對馬島賜物使大護軍李藝辭, 上引見曰: “宗貞茂至誠歸順, 父王嘉之, 常加撫育, 自貞茂死後, 其島賊人, 不念撫育之恩, 投間鼠竊, 汝之所知。 今...
    출처전거世宗實錄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千秋使,其外有別禮奏聞使·遼東押解官,三年又有使,其護送人馬之數,少則數十,多則數百.自義州至遼東,其路不邇,大槪五日程也.夏則冒霖雨渡大河,或阻淫潦,或陷泥淖,餱糧中絶,飢色可掬,冬則遡北風凌積雪,堅氷凝冱,晨霜澟冽,膚寒衣薄,面如黑色,口噤不得語,指直不得結,馬如蝟毛拳曲不行,人馬斃仆相繼於...
    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 千秋使,其外有別禮奏聞使·遼東押解官,三年又有使,其護送人馬之數,少則數十,多則數百.自義州至遼東,其路不邇,大槪五日程也.夏則冒霖雨渡大河,或阻淫潦,或陷泥淖,餱糧中絶,飢色可掬,冬則遡北風凌積雪,堅氷凝冱,晨霜澟冽,膚寒衣薄,面如黑色,口噤不得語,指直不得結,馬如蝟毛拳曲不行,人馬斃仆相繼於...
    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주제어사전(1)

  • / 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중국에 주로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었던 사행. 따라서 외교상 중요한 문제는 담당하지 않는 것이 통례였다. 해·묘·미의 해, 즉 4년에 한 번 파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예외인 경우도 많았다. 조선 초기의 경우에는 사은사·하정사·성절사·천추사·주문사·진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