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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조서” 에 대한 검색결과 2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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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5)

사전(18)

  • 중상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1310년(충선왕 2) 관부명이 ()로 개칭되었으나, 명종 때 김광부(金光富)의 관직이 중상서승으로 확인됨으로써 이전에는 중상서로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1356년(공민왕 5)과 1369년에 중상서로 복구되고, 1362년과 1372년에는 또다시 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6인, 기관(記官) 2인, 산사(算士) 2인을 두었다. 1310년(충선왕 2) 라 하였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중상서로 고치고 영을 봉어(奉御)라 하였다. 그 뒤 다시 로 고치고 봉어를 영이라 하였다가 1369년 다시 중상서로 칭...
  • TD_E2_D_0463 관직 器玩, 麗制, 御用 百官志 D_15_05_49 대동운부군옥 15권 5장 49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5권 5장 49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상서(中尙署) 정치행정/관청 집단 기구 고려~조선초기 고려~조선초기 이석규 고려 목종 1410년(태종 10) 7월 공조 [정의] 고려에서 조선초기에 왕이 사...
    관련어중상서(中尙署)
  • TD_E2_D_0552 中尙 관직 御用器翫, 穆宗, 忠宣王 百官志 D_17_01_32 대동운부군옥 17권 1장 32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7권 1장 32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고서·고문서(7)

  • 右挾船主金繼重, 年八十七, 居廣州蠶室。 嘉義朴益祥, 年七十九, 居南部纛島。 嘉義韓時雄, 年七十三, 居西部黑石里。 嘉義洪命輝, 年七十二, 居南部纛島。 嘉義金聖集, 年七十二, 居西部龍山。 嘉義白泰福, 年七十二, 居南部西氷庫。 嘉義吏李聖集, 年七十, 居西部義盈庫洞。 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서울특별시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出, 斥賣牛馬而償之, 不念民弊, 處事顚倒之狀, 據此可知。 其他一島之中, 怨咨朋興, 莫重保障之地, 人心離散, 則日後得力, 何可望乎? 請江都留守徐元履罷職。 內官之與外朝, 不相干涉。 缺一行餘招致吏, 妄用策紙, 叱辱工曹堂上, 無所不至。 有若上官檢缺三字事極可駭。 如此橫恣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金遂榮, 各船監官劉海鳳等六人帖加·金玉圈子, 自訓鍊都監頒給, 使之改懸。 黃海水營領船裨將金重玉, 昨年已蒙加資之典, 邊將奉承傳。 舟橋都沙工申在蕃, 纛島管領朴萬秋, 御營廳牢子姜得禧, 都掌軍士朴七金, 兩邊項船都沙工宋後繼·吳順乭, 各木二疋·布二疋, 吏金光宅等二人, 使令一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서울특별시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訛言之作,或無根而自起,或有機而將發,牧之應之也,或靜而鎭之,或默而察之。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之外,炳幾察變,先事設備,以之消亂萌而絶禍根,方可曰盡其職也。 張詠知益州。民間訛言云,‘有白頭老翁,午後食人男女’,郡縣譊譊,至暮路無行人。浦知縣,謂曰:“汝歸縣,訪市肆中歸明人,【謂棄暗投明】 尙爲鄕里患者,必大言其事,但立證解來。” 明日果得之,送上州。公戮于市,卽日帖然,夜市如故。公曰...
    권차명牧民心書 卷八 | 문체雜著類|論說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按問果一民也與僧行于道中殺僧取其祠部戒牒二衣因自披剃爲僧寮屬問何以知之公曰吾見其額上猶有繫巾痕也 民間訛言有白頭老翁午後食人男女浦謂曰近訛言惑衆汝歸縣去訪市肆中歸明人尚爲鄉里患者必大言其事但立證解來明日果得之公遂戮于市即日帖然夜市如故公曰妖訛之興沴氣乘之妖則有形訛則有聲止訛之術在乎識斷不在厭勝...
    서명宋名臣言行錄 | 저자주희(朱熹), 이유무(李幼武) | 자료문의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주제어사전(2)

  • /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를 관장하였던 관서. 고려 목종 때 중상서를 설치하였고, 문종이 직제를 정하여 영 1인, 승 2인을 두고, 이속으로는 사 6인, 기관 2인, 산사 2인을 두었다.

  • 봉어 / 奉御 [정치·법제/법제·행정]

    다시 국으로 환원되자 봉어로 고쳐졌고, 1372년 또다시 사선서·봉의서·장복서·사설서·봉거서·의 령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