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겸설서”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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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57)
사전(44)
- 겸설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직. [내용] 정원은 1인이다. 처음 설치한 시기는 미상이나 조선 중기부터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영조 때 『속대전』에 정식으로 직제화되었다. 홍문관의 박사 이하 관원 및 예문관의 봉...
- 민백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42년 세자시강원의 겸설서(兼說書)가 되었으며, 다음해 사헌부지평, 다음해 사간원정언, 1746년 홍문관수찬, 1748년 홍문관부응교, 1753년 세자시강원겸문학을 역임하였고, 1754년 이후 줄곧 승지를 지냈다. ...이칭별칭 대이(大而)
- 설서(說書)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설서 설서 說書 세자관속(世子官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황태자시강원(皇太子侍講院) 겸설서(兼說書), 우정자(右正字), 좌정자(左正字)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정자(正字), 황태자익위사(皇太子翊衛司) 정치행정/관직·관품상위어세자관속(世子官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황태자시강원(皇太子侍講院) | 하위어겸설서(兼說書), 우정자(右正字), 좌정자(左正字) | 관련어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정자(正字), 황태자익위사(皇太子翊衛司)
- 이현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1743년(영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8년(영조 24)에는 겸설서(兼說書)를 지냈다. 1750년에는 설서ㆍ정언(正言)ㆍ부교리(副校理)ㆍ교리(校理)를 역임하면서 화평옹주(和平翁主)의 집을 방문하지 말 것을 주청하였다. 1751년에...이칭별칭 현도(顯道)
- 김상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입양되었다. [내용] 1697년(숙종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검열이 되고 설서(說書)를 지냈다. 1707년 겸설서(兼說書)를 거쳐, 1710년 정언(正言)이 된 뒤 문학(文學)ㆍ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이칭별칭 조경(調卿)
고서·고문서(13)
- 李埈公實錄資料 2 [근현대 구(舊)황실 관련 자료 조사 집성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兼侍講院說書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王公履歷書』에서 채록하였다. 그런데 고종실록에 따르면 1887년 6월 1일 아닌 6월 5일에 이준용을 侍講院兼說書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욱재 2015. 01. 06소장처궁내청 공문서관 | 조사일2015. 01. 06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李埈公實錄資料 2 [근현대 구(舊)황실 관련 자료 조사 집성 | 한국학중앙연구원])을 侍講院兼說書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李埈公事歷』에서 채록하였다. 정욱재 2015. 01. 06소장처궁내청 공문서관 | 조사일2015. 01. 06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교동부(喬桐府)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28148 B028148 교동부 喬桐府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純祖 21年 8月 9日_012 祜爲分承旨, 尹尙烈爲弼善, 李嘉愚爲文學, 金正喜爲兼說書, 金愚淳爲同敦寧, 金U+28A7F爲分兵曹參議, 玄鎭商爲吏曹正郞, 金昊淳爲工曹正郞, 金遇明爲分兵曹正郞, 金龍見爲承文判校, 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교동부(喬桐府)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崔尙履爲兼說書, 李震亨爲兼春秋, 張漢相爲兼喬桐府使, 尹遇進爲兼北靑府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兼說書, 金在宣爲造紙別提, 李寅弼爲長興奉事, 李允植爲戶曹佐郞, 洪瀷爲南海縣監, 吳鼎周爲蔚珍縣監, 黃U+257B5爲正言, 李湜爲工曹正郞, 洪益謨爲監役, 李聞榮爲忠勳都事, 洪命周爲承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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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설서 / 兼說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시강원의 정7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처음 설치한 시기는 미상이나 조선 중기부터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영조 때 ≪속대전≫에 정식으로 직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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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한 / 閔丙漢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61∼?). 1889년(고종 26) 문과에 병과로 급제 후, 세자시강원 겸설서·겸필선·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왕태자시강원첨사·궁내부특진관·경효전제조·중추원찬의·궁내부대신의 임시서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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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서 / 說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시강원의 정7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태조가 세자관속으로 좌·우정자(左右正字) 각 1인을 두었는데, 세조가 설서라고 개칭하고 1인으로 줄였다. 그 뒤 영조가 겸설서 1인을 더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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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시강원 / 世子侍講院 [정치·법제/법제·행정]
4품), 필선(정4품), 겸필선(정4품), 문학(정5품), 겸문학(정5품), 사서(정6품), 겸사서(정6품), 설서(정7품), 겸설서(정7품), 자의(정7품)가 각각 1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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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 鄭蘊 [종교·철학/유학]
1569(선조 2)∼1641(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숙, 아버지는 유명이다. 어머니는 강근우의 딸이다. 1601년 (선조 39)에 진사,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시강원겸설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광주의 현절사 제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