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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강도영” 에 대한 검색결과 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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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3)

사전(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 대교구총람(大敎區總覽)』(한국교회사연구소편, 가톨릭출판사, 1984) (1863-1928) 1863(철종 14)-1929. 천주교 신부.
    이칭별칭마르코
  • 김성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의] 1870(고종 7)∼1938. 천주교 신부. [내용] 세례명은 알렉시오. 평안남도 은산(殷山) 출신. 박해를 피하여 이천(伊川)에 살다 서울로 이주했다. 당시 조선교구교구장이던 불랑 주교에 의하여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83년에 (...
    이칭별칭알렉시오
  • 강성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업을 마쳤다. 1896년 4월 26일 약현성당(藥峴聖堂 : 지금의 중림동성당)에서 ()ㆍ정규하(鄭圭夏)와 함께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서품된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신부가 된 뒤 곧바로 임지인 부산 절영도(絶影島)로 내려갔고,...
    이칭별칭라우렌시오
  • 가톨릭대학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은 개교한 지 10여 년 만인 1896년 4월에 배출된 페낭신학교 유학생출신 강성삼(姜聖三)ㆍ()ㆍ정규하(鄭圭夏) 3명이었다. 학교의 운영은 교회의 비용으로 충당하고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았으며, 1924년부터는 경성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정식 인가를 받...
    이칭별칭가톨릭대|가대
  • 안성시(경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립 안성소학교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 안성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이 최초이다. 1907년양성면 미산리에 () 신부가 세운 사립 해성학교(海星學校), 1909년 안성천주교회내에 프랑스 신부 공베르(한국명 孔安國)가 세운 안법학교(安法學校)가 있다. 또한 1...

고서·고문서(26)

  • 畫者, 或恐有筆畫失眞之慮矣。 上曰, 此則汝言, 是矣, 上又曰, 汝之所見, 終無未盡處耶? 榮祏曰, 屢次瞻望, 少無所異, 而筆畫極精深矣, 若有未盡處, 事雖重大, 豈敢不仰對乎? 上曰, 幀何如耶? 拓基曰, 臣, 待罪江都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則豈有咫尺京城, 不爲奔問之理乎? 自江都還也, 興島, 適遇同壻李希顔, 則其老婢率一女子, 同舟日久, 荏苒相近。 其爲妻妾之所譏、朋友之所笑, 則知不免矣。 豈料終爲朝家拿鞫之罪也? 詳問老婢, 則婢之夫, 旗牌哨官金季生也。 嘗往西路, 得一常女而生此兒, 仍養爲己女云。 金季生非...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辭見上 臺諫論事之道, 不必目覩然後爲之, 或因親見, 或因傳聞, 隨事論啓者, 乃其規也。 連啓之際, 啓辭之或添或删, 亦其規也。 亨道 奪之事, 雖出傳聞, 其時一行所傳之語, 豈皆盡信? 況其偸用國穀之狀, 昭不可掩, 而嚴旨之下出於情外, 不可以此輕遞言官, 請掌令崔繼勳, 持平李袗...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168 B004168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14年 7月 16日_014 ... 四五十名, 而其中老弱病故, 及各衙門立待卒計除, 則應役之卒, 二十餘名, 而三等馬十二匹矣, 科外種種之(之)役, 臣不敢一〈?〉數之於天聽之下, 而撮其大者而言之, 金浦陵所·幀朔望...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4618 B004618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14年 7月 16日_014 ... 四五十名, 而其中老弱病故, 及各衙門立待卒計除, 則應役之卒, 二十餘名, 而三等馬十二匹矣, 科外種種之(之)役, 臣不敢一〈?〉數之於天聽之下, 而撮其大者而言之, 金浦陵所·幀朔望...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신문·잡지(2)

주제어사전(2)

  • / [종교·철학/천주교]

    항일기의 천주교인·신부(1863-1929).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제로 서품된 한국인 신부 3인 중 한 명으로, 세례명은 마르코이다. 1896년 약현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고,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며, 첫번째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

  • 강성삼 / 姜聖參 [종교·철학/천주교]

    일 약현성당에서 ·정규하와 함께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서품된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이후 6년간 양산·언양·진양 등 14개 공소를 돌아다니며 전교하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