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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갑자사화” 에 대한 검색결과 31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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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06)

사전(28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완전히 몰락하였다. 무오사화가 기성 훈구 세력과 신진사류 세력의 정치 투쟁이었다고 하면, 는 궁중 세력과 훈구사림파 중심의 부중 세력과의 정치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성종 때 양성된 많은 사림이 수난을 당해 유교적 왕도...
  • [한국학영문용어용례정보 구축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1504년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 1445-1482)의 폐위 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
    정의1504년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 1445-1482)의 폐위 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 문광부표기Gapja Sahwa | MR표기Kapcha Sahwa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용어 용례 연구팀(연구책임자 : 한형조 교수)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화(士禍) 무오사화(戊午士禍) 정치정치운영/정쟁·정론 사건 대한민국 조선 김돈 1504년(연산군 10) 이세좌(李世佐), 홍귀달(洪貴達)/훈구, 사림 [정...
    상위어사화(士禍) | 관련어무오사화(戊午士禍)
  • 전주이씨안양군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에 있는 성종의 셋째 아들 안양군의 유택. [내용] 경기도기념물 제122호이다. 안양군은 () 때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를 폐출케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 귀인정씨 및...
    연계항목전주이씨안양군묘(全州李氏安陽君墓)
  • 박인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 일어난 1504년(연산군 10)에 운봉으로 부처되고, 이어서?거제도‧제주도로 이배되면서 심한 형벌을 받았다. 중종이 즉위하여 이를 불쌍히 여겨 정난공신(定難功臣) 2등에 책록하고 진천군(鎭川君)에 봉하였으며, 노비 12명을 내려주었다. 국왕의 은총을 빙...
    이칭별칭진천군(鎭川君)

고서·고문서(19)

  • 1497년 권주(權柱) 교서(敎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 발발하자 귀양을 갔으며 결국 1505년(연산군 11)에 사사되었다.
    내용분류국왕/왕실-교령-교서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교서 | 현소장처안동 가곡 안동권씨 권주 종가
  • 金係行에 대한 族譜 내용 01 [조선시대 영남지역 종가생활문화자료 집성 및 DB화 | 경북대학교]
    1 김계행 종가 한국국학진흥원 金係行에 대한 내용이다. 자, 호, 관직, 거주지, 한 일 등에 대한 기록이다. 佔畢齋 金宗直과의 교유를 강조하였고, 김종직이 사망하자 그를 위해 시 등을 올렸다. 무오사화와 등에 연루되자 고향으로 내려와서 학생을...
    자료구분고문서 | 현소장처한국국학진흥원 | 자료문의경북대학교 우인수 교수
  • 에 아버지가 연루되어 온 가족이 충청도 괴산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李芑를 논박하다가 성주목사로 쫓겨나 유배중의 이문건과 조우하게 된다. 아들 中悅이 사사되는 비운을 겪는다. 李浚慶이 동생이다. 영공을 방문하니 대사간에 제수되었다고 한...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1913년 안동군 남선면(南先面) 정상동(亭上洞)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의 아들 李容이 학문을 닦던 魚隱亭 및 재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가 있다. 이 가운데 귀래정을 지은 이굉은 1504년(연산군 10) 당시 관직이 삭탈되고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
    내용분류경제-농/수산업-토지대장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토지대장 | 현소장처안동시청
  • ○은율(殷栗)에 사는 서리(書吏)가 와서 말하기를 “철물 실은 배가 마포(麻浦)에 정박해 있으니 노(奴)을 시켜 거두어들이십시오” 라고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
    년(연산군 10) 때 스승 김굉필이 극형을 받은 뒤, 모친이 병석에 눕게 되자 의술을 연구하여 손수 약을 지어 공양했다. 書畵는 물론 천문 ‧음률 ‧卜筮 ‧의술에 뛰어났고 특히 주역에 통달하여 이름이 났으며,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오직 후진 양성에 힘써 많...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신문·잡지(1)

주제어사전(11)

  • / [정치·법제/정치]

    1504년(연산군 10) 갑자년에 훈구사림파 중심의 부중 세력이 궁중 세력에게 받은 정치적인 탄압 사건. 이 사화의 결과, 궁중 세력이 승리해 정권을 잡고, 신진사류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무오사화가 기성 훈구 세력과 신진사류 세력의 정치 투쟁이었다고 하면,

  • 김굉필 / 金宏弼 [종교·철학/유학]

    1454-1504. 조선 성종, 연산군 때의 성리학자. 1498년 무오사화때 희천에 유배, 때 사약을 받고 죽었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소학>을 읽고 실천궁행을 강조했다. <소학>에서 제시한 생활규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의 도학정신은 조광조의 지치주의

  • 이창신 / 李昌臣 [종교·철학/유학]

    504년 때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중국어·이문에 있어서 당대의 일인자였다.

  • 김승경 / 金升卿 [종교·철학/유학]

    오르기 전부터 이미 자질과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고, 또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때 연좌되어 부관참시의 추형을 당하였다.

  • 사화 / 士禍 [종교·철학/유학]

    조선 전기에 조신 및 선비들 사이에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 세조, 성종 대에 이르러 주의, 정실, 향토 등의 관계로 여러 파벌이 생겨났다. 특히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 컸다. 1498년 무오사화를 기점으로 1506년 ,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