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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가리산” 에 대한 검색결과 73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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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69)

사전(1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리봉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두촌면과 춘천시 동면‧북산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051m. 김근원 사진
    이칭별칭가래산
  • 염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몫을 하였다. 태화강(太和江) 하구에 위치하여 개운포(開運浦)ㆍ유포(柳浦)와 함께 울산의 좌병영을 지키는 수군의 군사기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부근에 ()ㆍ천내산(川內山) 봉수가 있었으며, 동쪽 해안 지대에는 목장이 있었다. 염포 대안에는 처용암(處容巖)...
  • 이형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호란 때 강화로 적이 공격해 오자 김경징의 명에 따라 을 수비한다. 뒤에 적이 밀어닥치자 배를 타고 달아난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방어진(方魚津)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 선문대학교]
    3621 지명 방어진(方魚津) 방어진 方魚津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의 나루.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 동면(東面)에 속하였다.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에 있던 천내봉수(川內烽燧)는 남쪽의 ()과 북쪽의 남목천봉수(南木川烽燧)...
    유형분류지명
  • 방어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란 후 염포의 왜인들이 물러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인들이 이곳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천내봉수(川內烽燧)는 남쪽의 ()과 북쪽의 남목천봉수(南木川烽燧)를 이어주면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

고서·고문서(42)

  • 京畿道庄土文績_제41책 : 京畿道安山郡草山面所在庄土龍洞宮提出圖書文績類 104. 東面居柳生員奴己先 [19세기 사회경제 변동과 국가시스템의 충돌-규장각 소장 궁방전 관련 자료 데이터베이스 및 심층해제 | 서울대학교]
    1_14543 奎 19299 京畿道庄土文績 제41책 : 京畿道安山郡草山面所在庄土龍洞宮提出圖書文績類 41-104 104. 東面居柳生員奴己先 소지 1 103-104 29.5x45cm 한지, 관인, 관리의 題音, 배면 1장,
    자료명京畿道庄土文績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김건태 교수 연구팀
  • 17386 B017386 개운포 開雲浦 군사교통 大東地誌 권4 경상도 蔚山 烽燧 南木川東三十里川內魴魚津西在開雲浦下山南五十里爾吉南六十七里
    출처전거大東地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7569 B017569 개운포 開雲浦 군사교통 新增東國輿地勝覽 慶尙道 蔚山郡 烽燧 林郞浦烽燧 在郡南八十七里南應機張縣南山東應阿示浦 阿示浦烽燧 在郡南七十五里西應林郞浦東應示吉串 示吉串烽燧 在郡南六十七里西應阿示浦東應下山 下山烽燧 在郡南五十里西應示吉 串東應 烽燧
    출처전거新增東國輿地勝覽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8600 B018600 건평 乾坪 경제산업 京畿道邑誌 江華府志 江華府志卷上 堤堰 ... 田萬代功赤北堰 在長嶺里 堰 在仙源里 滿月堰 在仙源里 嘉陵浦堰 據上下道兩里 摩尼北鎭 江西二水之會乾坪水口堰 在位良里
    출처전거京畿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2873 B002873 갑곶 甲串 군사교통 江都志 _ _ 墩隍 ... 直一名, 入居典守. 月串屬[赤北, 鵂巖, 月串, 玉浦], 濟物屬[望海, 制勝, 炎珠, 甲串], 龍津屬[, 左岡, 龍堂], 花島屬[花島, 鰲頭亭], 廣城 ...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구술자료(4)

  • 한천자 명당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리산 한천자’ 이야기를 묻자, 풍수에 관한 긴 이야기라면서 본격적으로 설화를 구연하기 전에 ‘지관’과 ‘포수’와 함께 복록방에서 자게 될 경우 밤새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사연을 간단하게 들려주면서 청중들과 한바탕 웃고 난 뒤, 진지하게 구연을 시작했다.
    조사일시2010. 01. 13 | 조사장소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3리 467-1번지 노인 회관 | 제보자박경주
  • 한천자 명당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남덕영 제보자가 앞의 노적봉 유래 이야기를 마친 후, 가리산의 한천자 무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남덕영 제보자가 하였 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권오선 제보자가 구연했다.
    조사일시2010. 1. 14 (목) | 조사장소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원동1리 201번지 마을회관 | 제보자권오선
  • 김옥순 할머니는 춘성군 인근이 집으로 인민군과 중공군, 미군을 만난 사연과 비행기 폭 격의 두려움에 대해 구술했으며 특별히 바위굴에서 3개월 간 생활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이종희 할머니는 비교적 부유했던 친정의 피난살이 이야기와 피난 중 교전상황을 겪어 총알
    조사지역강원 춘천 | 조사일2013년 2월 17일
  • 그만큼 그만큼 선두역할을 한 놈이여. [조사자1 : 여기 보니까 뭐 원산, 화천, 영월, 뭐 안 가신 데가 없네요.] 그 여기 서류함에 없어? 여기 붙어있는 거 있 는? 내가 딱 다 갖춰 있습니다. [조사자1 : 여기 해군 서식으로 증명을 받으셨네요. 여기 그런
    조사지역제주 | 조사일2014년 1월 21일

신문·잡지(8)

  •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과安城郡于中谷面蓮峰里所在畓三石十八斗落合十石七斗落新舊文卷合四十餘張를携帶入城엿다가陰今月初十日에中路遺失와該郡셔立案成出엿시니誰某拾得야도該文卷은休紙施行겟고拾得신니가布㕓四房金興友게로或傳시면厚謝겟소 安城居 金學仁 告白
    게재일1902년 6월 26일 | 기사분류광고
  •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과安城郡于中谷面蓮峰里所在畓三石十八斗落合十石七斗落新舊文卷合四十餘張를携帶入城엿다가陰今月初十日에中路遺失와該郡셔立案成出엿시니誰某拾得야도該文卷은休紙施行겟고拾得신니가布㕓四房金興友게로或傳시면厚謝겟소 安城居 金學仁 告白
    게재일1902년 6월 25일 | 기사분류광고
  •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과安城郡于中谷面蓮峰里所在畓三石十八斗落合十石七斗落新舊文卷合四十餘張를携帶入城엿다가陰今月初十日에中路遺失와該郡셔立案成出엿시니誰某拾得야도該文卷은休紙施行겟고拾得신니가布㕓四房金興友게로或傳시면厚謝겟소 安城居 金學仁 告白
    게재일1902년 6월 21일 | 기사분류광고
  •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과安城郡于中谷面蓮峰里所在畓三石十八斗落合十石七斗落新舊文卷合四十餘張를携帶入城엿다가陰今月初十日에中路遺失와該郡셔立案成出엿시니誰某拾得야도該文卷은休紙施行겟고拾得신니가布㕓四房金興友게로或傳시면厚謝겟소 安城居 金學仁 告白
    게재일1902년 6월 23일 | 기사분류광고
  •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本人이稷山郡三東面所在畓六石九斗落과安城郡于中谷面蓮峰里所在畓三石十八斗落合十石七斗落新舊文卷合四十餘張를携帶入城엿다가陰今月初十日에中路遺失와該郡셔立案成出엿시니誰某拾得야도該文卷은休紙施行겟고拾得신니가布㕓四房金興友게로或傳시면厚謝겟소 安城居 金學仁 告白
    게재일1902년 6월 24일 | 기사분류광고

주제어사전(4)

  • /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두촌면과 춘천시 동면·북산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051m. 태백산맥의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매봉(800m), 서쪽에 대룡산(大龍山, 899m), 동쪽에 가마봉(可馬峰, 1,192m) 등이 솟아 있다. 이 산의

  • 염포 / 鹽浦 [지리/인문지리]

    울산시 염포동으로 편입되었다. 삼포의 개항 당시 염포의 왜인의 수를 60명으로 한정하였는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날 당시에는 120여 명이 상주하였다. 1512년 임신약조의 체결로 염포의 왜관은 폐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부근에 ()ㆍ천내산(川

  • 방어진 / 方魚津 [지리/인문지리]

    이곳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천내봉수(川內烽燧)는 남쪽의 ()과 북쪽의 남목천봉수(南木川烽燧)를 이어주면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울산에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節制使營)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

  • 기장이길봉수대 / 機張爾吉烽燧臺 [경제·산업/교통]

    보면, 이길봉화는 동쪽으로는 하산봉화, 북쪽으로는 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해발 129.2m의 봉태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의 중앙 봉돈은 높이 2.4m, 지름 9m의 돌로 쌓은 것이다. 중앙의 봉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직경 약 30m인 환상(環狀)의 담장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