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주민의 정치 동향과 반동세력의 투쟁 형식에 관한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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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북조선 주민의 정치 동향과 반동세력의 투쟁 형식에 관한 참고자료
· 키워드민주개혁, 토지개혁, 농업현물세, 여성평등법
· 대표주제어북한 주민의 정치 동향
· 설명문북쪽 주민들은 토지개혁 등 민주개혁과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 이에 비해 반동분자들은 남쪽 반동세력과 미국의 비호 아래 조선의 민주적 법률에 반대하고 있다.
· 발신자이그나티예프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대표표제어: Справка о политических настроениях населения Сев. Кореи и формах борьбы реакции
산출물명: ЦАМО,ф.172,оп.614631,д.21,лл.5-8.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연방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Политические настроения населения Северной Кореи
면수: 4



번역문


북조선 주민의 정치 동향과 반동세력의 투쟁 형식에 관한 참고자료 본문 내용 중 북조선 노동자 및 사무원에 대한 노동법령, 북조선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산업, 교통, 운수, 통신, 은행 등의 국유화법령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RG 242 National Archives Collection of Foreign Records Seized, Captured Korean Documents, Doc. No. SA 2009 II, Item #37 󰡔북조선 시도군 인민위원회 대회 중요문헌집󰡕,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 1947).

북조선의 국내정치 상황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중의 열의가 높다는 점이다. 실행중인 모든 민주개혁들은 매우 폭넓은 주민층의 뜨거운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인민의 분위기는 새로운 민주주의 조선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희망에 차 있으며, 이 분위기는 다음과 같은 여러 원칙적 요인들을 특징으로 한다.
1. 소‧미위원회 협상이 결렬되자, 수백만 근로자를 자신들의 대오로 규합하고 있는 북조선의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 들은 통일전선을 이루어 조선 인민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 정부를 강요하려는 반동분자들의 시도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약 5백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와 시위 들이 열렸다는 것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각 집회와 시위는 민주적 성과들을 옹호하고 인민위원회 및 통일민주주의전선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흘렀으며, 조선에 대한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하고 그 결정의 정확하고도 일관된 이행에 찬동하는 흐름이었다. 더불어 집회와 시위에서는 조선에 반동 친미 정권 수립을 목표로 삼은, 김구와 이승만을 우두머리로 한 반동분자들의 파괴적인 반(反)인민 활동에 반대의 뜻을 표하였다.
2. 북조선 인민의 한결같은 지지를 업고 농지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농촌의 봉건적 관계가 영구히 청산되었고, 토지 소유에 대한 조선 농민의 오랜 염원이 실현되었으며, 농민계급의 물질적 수준 제고와 경제적인 삶 전체의 급속한 발전 그리고 민주 질서 확립 및 승인을 위한 필요 조건이 마련되었다.
토지개혁은 농촌에 굉장한 정치적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근로인민 각 계층은 엄청난 환희로 토지법을 맞아들였다.
토지를 소유하게 된 북조선 농민들은 모든 종류의 지역 비료를 이용해 올해 제때 춘계파종을 시작했다. 5월 말경에는 이미 곡류 파종이 완전히 끝났고, 6월 말경에는 모내기도 끝났다.
3. 북조선 농민들은 농업현물세에 관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46년 6월 27일자 결정을 매우 열렬히 받아들였다. 이들은 수확물의 25%를 국가 보유분으로 내놓아야 하는 농업현물세가 자신들의 물질적 행복을 보장해 주고 농업 증진에 필요한 조건들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전에는 농민들의 수확물이 최고 75%까지 세금과 지주에게 갔기 때문에 이들은 거의 굶주리며 살았던 것이다. “농업현물세법은 우리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우리를 우리 재물의 완전한 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농민들은 천명한다.
그리하여 농업현물세 도입에 관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으로 친일 반동분자들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들은 농지개혁과 춘계파종 중에 농민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밭에서 거두어 들일 수확물을 붉은군대가 전부 빼앗아갈 것이라고 협박을 했던 것이다. 한편 결정은 파종면적 확대와 수확량 제고에 자극제가 되고 있다.
4. 46년 6월 24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총회에서 노동자 및 사무원 노동법이 채택되었다. 이 법률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헌이자 민주주의 세력의 새로운 승리이다.
노동법은 일본의 식민지 노동착취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으로, 노동자‧사무원 및 북조선의 여타 근로주민 계층은 매우 기뻐하며 이를 맞아들였다. 이 법이 발표되자 각지에서 노동자‧사무원들의 대회와 집회, 시위가 열렸다. 집회나 대회 연설들을 보면 법률 발표로 인해 노동자대중이 느꼈던 환희를 알 수 있다. 일례로 사동광산(평성)의 전기기사 김봉길(Ким Бон-Гир)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법은 전기처럼 밝게 빛날 것입니다. 노동법은 조선 노동자계급에게는 역사적인 문헌입니다. 저는 이 광산에서 벌써 2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기쁜 날을 단지 꿈꾸기만 했습니다. 제가 우는 걸 용서하십시오. 이건 기쁨의 눈물입니다. 여러분. 43년 8월 7일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날은 저의 사랑하는 22살짜리 아들 김창일(Ким Чан-Ир)이 그 어디서도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죽은 날입니다. 의사는 당시 제게 치료와 약값을 지불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제 아들의 치료를 거절했었습니다. 만약 그때 김일성과 공산당이 있었다면 제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일성님과 공산당에 감사드립니다.”
5. 7월 30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 여성을 봉건적 족쇄에서 영원히 해방시키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로 국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여성평등법을 채택했다. 이 법이 가진 의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이 법에 열렬히 찬성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미 알 수 있다. 이 법과 관련해 도처에서 열린 집회와 대회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붉은군대, 그리고 소련의 대원수 스탈린 동지에 대한 감사의 말들이 쏟아졌다.
류코군의 한 농부아낙 김리(Ким Ли)는 집회에서 연설에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렇게 훌륭한 여성평등법 공포에 대해 저 자신의 느낌과 기쁨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일본인들은 붉은군대를 가지고 우리를 놀라게 했고 소련에 대한 전혀 근거없는 소문들을 유포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선 인민이 수세기에 걸친 압제를 떨쳐버리고 가난과 절망적인 삶을 청산하도록 붉은군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6. 8월 10일 일본인들과 조선 인민의 배신자들이 소유하고 있던 공업, 운수, 통신, 은행을 국유화시키는 법률이 채택되었다. 이 법 역시 북조선 각처에서 열렬한 찬성과 함께 맞아들여졌다. 이와 관련한 발언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은 이제 자신들의 손으로 건설한 공장의 주인이 된다고, 그러나 일본 치하에서는 이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일본 지배의 유해한 결과들을 근절시키는 이 모든 민주적인 법률의 채택은 반동주의자와 친일분자 들의 적극적인 저항을 불러온다.
반동세력의 활동 방향은 실행중인 민주개혁을 좌절시키고 각 인민위원회, 특히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명예를 훼손시키며, 인민들 안에 소련과 붉은군대에 대한 불만과 적의를 조성하고, 통일민주주의전선을 분열시키는 데 맞춰졌다. 또한 미국인들과 그 졸개인 김구, 이승만의 반동정책을 지지하는 것도 그들의 활동 방향이었다.
반동 친일 분자들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채택한 민주적인 법률들을 중상하려 애쓰고 있다. 일례로, 노동법이 시행될 즈음 그들은 이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소규모 기업소들은 이 법률을 견뎌내지 못해 기업주들이 기업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동적인 성향의 기업주들도 개별적으로 의견을 밝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까지는 몇몇 독립적인 사람들이 공장을 열겠다는 열망을 가졌으나 이제는 그 열망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수입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서 기업주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평등법 공포와 관련해서는 조선 여성들에게 평등을 부여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거나 우선은 여성들을 가르치고 계몽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들을 했다.
반동분자들은 선동에서 경제적 어려움, 공장의 원료 부족, 실업, 붉은군대 개별 군무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을 이용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북쪽 반동분자들은 조선 남쪽에서 온 반동세력의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으며, 조선의 민주화에 반대하는 서울발 미국의 선전을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반인민적 활동에 있어 반동세력은 도발행위, 공갈, 주요 일꾼들에 대한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예로 북조선의 일련의 지역들에서는 조선 남쪽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테러집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행중인 민주개혁들을 좌절시키려는 반동세력의 수고는 모두 성공적이지 못하다. 반동세력의 활동은 인민대중의 반격을 받고 있다. 조선 남쪽에서는 김구와 이승만, 북쪽에서는 이들의 공모자들이 벌이는 활동을 인민은 친미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으로 올바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정치부장 (이그나티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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