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묘영건청등록(文禧廟營建廳謄錄)

홈 > 연구성과별 자료검색
[연구사업]한국학 기초자료사업
규장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2단계)
서지사항
내용분류국왕/왕실-의례
형식분류고서-의궤
작성단체이성원(李性源)
작성지역한성부
작성시기1790
판본필사본
장정변철개장
수량1책 67장
판식四周單邊, 有界, 烏絲欄套式板, 半葉 12行24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재질표지: 홍포(紅布), 본문: 저주지(楮注紙)
표기문자한자
도설3면(채색), 반차도 25면(채색)
현소장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서비스 상세정보

본문



1789년(정조13) 4월 정조의 장자였던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의 문희묘(文禧廟)를 영건하고 신위(神位)를 옮긴 과정에 대해 기록한 등록이다.
문효세자는 정조가 의빈 성씨에게서 얻은 아들이다. 휘는 순(㬀),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순조의 이복 형이다. 1782년에 태어나 두 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786년 음력 5월 11일에 5세로 요절하였다. 사후 문효세자로 추증되었고 대한제국 수립 후 태자로 추증되었다.
문효세자의 묘(廟)인 문희묘는 본래 경모궁 남쪽 담장 바깥에 있었으나 그 어머니인 의빈(宜嬪)의 묘(廟) 근처로 옮기는 것이 정리상 좋겠다고 하여, 영건 및 신위 이봉이 시작되었다. 1870년(고종7) 정월에는 안국방(安國坊)에서 창의궁 궁내의 의소묘 안에 있는 별묘(別廟)에 옮겨졌다가, 1900년에는 다시 의소묘와 함께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 앞에 있는 영희전(永禧殿)에 옮겨졌다. 1908년 7월 의소묘와 문희묘의 신위를 매장하면서 문희묘는 없어지게 되었다.
본 등록은 왕세자의 묘(廟)를 새로이 영건하고 신위를 이안한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정조대 왕실 의례 거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영건의 구체적 진행 과정에서부터 관련 관서 간의 업무 협조 과정, 필요한 각종 기물의 종류와 규격 및 그 제작에 소요된 물품의 종류, 수량과 그 조달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조선후기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생활사 등 여러 방면의 연구에 활용 가치가 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