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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恰如相似者, 如孔子之於陽虎, 是也, 何可以物色, 而眞得其人哉? 且其凶人, 旣知朝家之購捕大索, 必已潛形匿跡, 遠走深藏, 豈有公然大膽, 敢出入都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晝講入侍時, 特進官閔維重所啓, 曾於六月間, 戶曹判書尹堦, 以京畿各邑會付穀物蕩竭之故, 請以沿海邑二千餘石, 爲先輸納於沿海邑者, 其數甚多云, 竝自備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得免生梗之患, 而今番使行, 員役所持者甚少, 右相, 以此爲慮, 各衙門銀貨, 欲令許貸, 而此事曾有定奪防塞之擧, 故載嵩, 不敢擅〈便〉, 此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江都太, 自戶曹取用, 而每年三南田稅太上納時, 直爲依數除留於江都, 此若有不便之端, 則以京倉新捧之太移送, 則可謂用舊蓄新之道矣。 左議政南九萬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頃者臣以兪世基等役民築堰事更査爲請, 而江都築堰, 曾有禁令與否, 則未及考出, 只以保障重地, 異於他處, 士夫, 不當私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多功勞矣。 其將校輩, 呈狀于臣曰, 江都·南漢同是保障之地, 朝家一視無間, 而江都則連設觀武才, 南漢則壬戌年後, 更不設行云云。 自萬科之後, 武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所啓, 今年木花, 最爲無實, 前頭軍布, 實無備納之勢, 且冬節將迫, 許多窮民, 必多凍死之患, 臣於到任之後, 有若干拮据措備者, 若以銀貨, 換得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尹趾善所啓, 大司諫李濡, 以江都木二千同, 移給平安道事, 及各邑還上, 勿定分數, 隨民力捧納事, 上疏矣。 江都木綿, 因本道啓請, 一千五百同, 覆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賣, 又多人言者, 亦甚不韙。 且關西·江都移轉米事, 則泰采, 元無貿錢之事, 繼莅之臣, 亦以臺啓爲爽實云, 而地曹發賣之事, 則槪聞十月, 守禦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健命以爲, 不可專意內城, 排立許多軍兵云, 而基[堅]守天塹之際, 則內城, 有何排立軍兵之事乎? 至於築役, 則臣嘗商度, 當以三年爲限, 一年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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