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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彦綱爲工曹判書, 趙鳴鳳爲兵曹佐郞, 李徵道爲典籍, 李薈爲童蒙敎官, 崔守慶單付承文博士, 呂必禧單付副正字, 柳廷喬爲濟州敎授, 金萬胄爲安州牧使, 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華留守李寅燁所啓, 臣於年前登對時, 以三軍門藥丸, 間式年移置於江都·南漢事, 有所定奪矣。 臣未知厥後諸軍門, 果皆輸送與否, 成命之下, 不可不着實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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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卽者訓鍊大將李基夏, 來詣闕中, 以爲有江都城址往審之命, 今方發行爲計, 而工曹參判閔鎭遠, 稱以情勢難安, 不爲進去, 旣有偕往之命, 則不可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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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每年所捧二百餘同, 移送於慈母山城, 以爲待變之需云, 慈母小城, 而屢年儲置者, 已至數百同。 今後則以慈母山城所送者, 每年移送於江都, 嶺南射軍木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爲報來, 請爲蕩減, 考見其時文書, 則實狀如此, 反畓田結所出太代米一百十二石零, 朝家旣以畓結, 給災蠲稅, 則 江都移轉, 自歸蕩滌之中, 而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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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㙫狀達也。 備陳本道民事切急之狀, 且以爲甲午年移送湖南穀物四萬七千八百石內, 一萬四千二百十石零, 濟州移轉及該道飢民白給計除外, 尙爲三萬三千五百八十八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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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2]江都米移用事, 旣已定奪, 故一萬六千石取來之量, 自備局當爲入啓輸運, 船價將至千餘石, 虛費可惜, 曾在辛亥, 朝家爲賑飢民, 亦以爲水運站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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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詳見其形勢矣。 上曰, 缺三行 錫胄曰, 臣嘗見輿地乘覽[輿地勝覽], 文殊山, 卽睥睨山也, 以其見江華城中故也。 高麗時, 改以文殊山, 缺窄梁每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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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則均施惠澤, 實合事宜, 辛亥以上還上, 似當與 江都一體蕩滌。 下詢于大臣處之, 何如? 領議政金壽恒曰, 廣州·江華, 同是保障之地, 朝家施惠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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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例差送, 以爲趁早覆審之地, 似當矣。 上曰, 臺啓尙且爭執, 大臣又爲陳達, 依前例差送, 似可矣。 壽恒曰, 湖南幅員之大, 雖不及於嶺南, 而非他道之比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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