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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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黃欽疏曰, 伏以臣冥行缺自顧慙恧, 分甘廢捐, 乃於千萬意象之外, 忽承江都新命, 臣驚惶震惕, 罔知所以自措。 夫江都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閔鎭遠所啓, 江都·南漢, 俱是國家保障之地, 凡事不宜異同矣。 臣曾待罪江都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判府事崔錫鼎箚子。 大槪, 敢陳所懷, 冀蒙裁處事。 入啓。 原疏缺答曰, 省箚具悉卿懇。 今玆往審江都之命, 蓋所以重其事體也。 卿其安心往省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入侍時, 江華留守閔鎭遠所啓, 小臣六月入侍時, 江都城役勿爲停輟事下敎, 臣以秋則浮石, 冬則運石, 開春後, 當始築役之意, 仰達而退。 其時, 前領相李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利益, 而地連山城, 中無礙隔, 形勢順便, 不但爲操場之得其所而已。 故臣敢圖其地形以來, 特賜睿覽後, 下詢于廟堂, 卽爲定界割給事, 分付于京畿監司處,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藥房入診入侍時, 提調趙泰耉所啓, 忠淸道丁丑條稅太, 仍留賑資, 其代以湖南山城穀, 上納本曹, 而留賑太代, 則待秋作米, 移納江都矣。 其中牙山縣之鄕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右議政吳始壽所啓, 頃日登對時, 水原府所貸戶曹木綿三十同, 則勿爲會減, 其代以管餉屯穀移給事, 旣已定奪, 而第木綿三十同之價, 其數零星, 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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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云云事, 傳敎矣。 實結田稅之不當減, 地部經費之不能支, 誠如該曹啓辭, 而但念今年農事之凶荒, 畿甸比他道特甚, 不但根本之地, 理宜憂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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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江都軍兵四千餘名, 而地方甚浩, 脫有緩急, 勢難獨守, 雖使通津·仁川等近邑軍士, 竝爲入守, 亦難分守諸堞, 此非蒼卒可爲之事, 不可不豫爲講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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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本曹木同之儲置於江都者, 發遣郞廳, 旣已看審, 則南漢所儲地木之數, 亦至於九百餘同, 而一置於庫中之後, 不爲看審, 已過十年, 必不無腐傷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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