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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晝講時, 特進官蔡裕後所啓, 纂集之事, 旣已設局, 而考閱無憑, 時未纂修, 似當先送堂上·郞廳, 江都實錄, 考出謄來, 而其中散失, 多至二百餘卷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晝講時, 特進官蔡裕後所啓, 纂集之事, 旣已設局, 而考閱無憑, 時未纂修, 似當先送堂上·郞廳, 江都實錄, 考出謄來, 而其中散失, 多至二百餘卷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謾說, 其中雖或有係關國事, 而至於可錄於寶鑑者, 十無一二。 今者聖明, 日三開筵, 講論經書, 而猶以欲法祖宗, 紹述典謨, 以爲遵守觀感之地, 意甚盛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稅准萬石題給事, 特爲判下矣。 卽當行會本道, 而但取考當初沿海各官自納田稅, 則雖未及到泊京江, 想已裝載出海, 此外更無推移充數之路, 何以爲之? 敢此仰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傳敎矣。 賑救一事, 如是切急, 本道兩倉遺在米太五千九百餘石, 爲先發倉分賑, 而沿海各官稅船, 未及下海, 及纔離海口者, 竝令本道還爲取用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傳敎矣。 賑救一事, 如是切急, 本道兩倉遺在米太五千九百餘石, 爲先發倉分賑, 而沿海各官稅船, 未及下海, 及纔離海口者, 竝令本道還爲取用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宣惠廳啓曰, 江都米三千石, 運納京倉, 換給湖西·海西貢物價事, 前已停當, 而迄無上送形止, 湖西米船, 幾盡上來, 各司貢物價, 亦盡分給於江邊, 交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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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傳敎矣。 兩倉留庫及未及下海田稅, 分賑飢民事, 昨夜啓下之後, 待曉已爲撥馬行會, 而漕船則爲載後運田稅, 已盡下去, 直上納, 各官船隻, 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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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本道飢饉之狀, 已悉於李㬅前日狀啓中, 故因本司回啓, 自上特加軫念, 群山·羅巖兩倉未運稅米五千石題給之外, 又有准萬石之敎, 而兩倉時存之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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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又啓曰, 以各道分軍單子, 傳曰, 南漢山城改分軍處, 改書以入事, 傳敎矣。 取考守禦廳文書, 則曾在辛卯年, 因左議政金堉榻前所啓, 前日南漢所屬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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