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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2]江都, 則各各軍門, 當分定所守, 而國家若不入, 則本府軍餉未輸之物亦多, 以些少軍兵, 不可守備矣。 兩局所屬, 乃侍衛缺不可分守江都, 而外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知何如? 德遠曰, 其被抄與不被抄者, 爲人不甚相遠, 而擇其優者, 抄錄以啓, 其中, 臣等有見之者, 或有不得相見者矣。 上曰, 依輪對武臣入侍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朝參入侍時, 開城留守李鳳徵, 平安兵使韓樞, 朔州府使徐穉, 昌城府使金重三改差事, 榻前定奪。 兵曹啓曰, 平安兵使有闕, 依近例令備邊司議薦, 何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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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可以審知矣。 上曰, 官舍移入城中, 似爲着實, 使之仔細看審後稟定, 可也。 南九萬曰, 以此下敎出於擧行條件, 使摠戎使往見量度, 登對時口陳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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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侍時, 刑曹判書李益壽所啓, 上年七月分韓山郡·江都所納米五百石裝載船一隻, 到仁川八尾島前洋致敗, 穀米終未得一石, 格軍一名渰死, 屍體亦不能鉤得, 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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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全羅道檢[?]營軍餉穀物,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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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未時引見時, 左議政權大運進曰, 近來日氣不適, 朝晝異候, 不審聖體, 若何? 上曰, 無事矣。 大運曰, 兩慈殿氣候, 亦復如何? 上曰, 安寧矣。 大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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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今浦落廣闊, 便成一海, 彼此津船各五隻, 自公家旣爲造置。 高陽境, 則本無居民, 令本郡定置五名, 至於給復, 使之濟人, 而津夫無一名居其津頭。 故陽川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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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害處矣。 左相之言, 誠是, 令廟堂商確以稟, 可也。 所入物力, 從其留守之啓稟, 亦當有所指揮矣。 禁衛大將閔宗道所啓, 江都鎭海寺, 有別作庫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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