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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人何殊也。 鳴吉曰, 文書之用年號, 事甚重難, 何以定奪乎? 上曰, 當有□定之規矣。 聖求曰, 洪翼漢, 有解圍後執送之言, 而彼尙不缺六七行 鳴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啓曰, 江氷將解, 雪消水漲, 則廣津以下沿江一帶, 爲賊陣背水, 而往來之賊, 通行爲難, 江都舟師, 雖不可取來, 左右各帖之船, 今方留泊於江都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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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德洙, 以司僕寺官員, 以都提調言啓曰, 本寺江都有米布捧上, 五六字缺間有收葺之處, 寺僉正洪茂業, 給馬下五六字缺 傳曰, 依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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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倭寇退屯嶺南, 千鎰, 與諸軍協力退討, 及守晉州, 山璹以疾在後, 兼程而進, 人謂之曰, 賊必欲得其城, 城且甚危, 何必急急以往? 山璹不聽, 遂入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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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瑬曰, 臣等皆經壬辰矣。 其時縱有斬級, 未有如此軍之勇敢者也。 上曰, 使勤王之兵處處來, 則賊必畏懼, 而無人入來奈何? 瑬曰, 冒死入來, 則寧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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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霱啓曰, 以金俊及事, 問于刑曹缺則韓僉知稱名人, 在江都全家被擄, 備銀二百餘兩, 欲爲贖還, 而價少難贖。 將爲空還之際, 書吏金俊及貸其銀一百兩, 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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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持平宋國澤啓曰, 江都乃國家保障之地, 當此與賊對壘之日, 莫重者軍器, 爲其官守者, 十分嚴飭守藏, 以待緩急之用, 乃其職也。 許多火藥·火器等物, 燒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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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司憲金壽賢, 掌令崔繼勳, 持平朴守文啓曰, 金化縣監李震行, 曾爲社稷參奉時, 陪奉社主, 自江都還也, 不敢不謹之罪, 已不可言, 而及其臺論追發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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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洪翼漢, 有解圍後執送之言, 而彼尙不缺六七行 鳴吉曰, 此事必思量而速定可矣。 聖求曰, 若於淸國文書, 則必書崇德可矣。 鳴吉曰, 料敵甚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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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云云, 急急下諭于帥臣及檢察使, 定一領將收取上來, 竝與京江船隻之輕快者, 作綜合爲兵船。 且水上忠原·原州·驪州·楊根等處所在公私船隻, 亦令帥臣分送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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