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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別營砲放三手米匱乏之代, 江都米七千石移給事, 自廟堂, 旣已入啓定奪, 而左右水站船, 以兩都漕運事, 已爲下去, 容載船隻, 他無辦出之路,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諸般積逋, 若不於如此之年, 漸次收捧, 則將無畢捧之期, 而第四五年間飢饉癘疫之餘, 孑遺殘氓, 有若大病新蘇, 若以一歲之稍稔, 盡責累年之逋負, 則民力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領議政申琓所啓, 訓鍊都監三手糧載運待變船, 凡九隻, 而若至腐破, 則例自朝家, 分付三南, 使之改造。 卽今年限已滿, 當爲改造者二隻, 使全羅左右各營改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華留守兪集一上疏。 大槪, 臣於前任, 情病亦有所難强, 累朔撕捱, 方俟誅譴之際, 遽有此江都居留之命。 尤非如臣所可堪承, 伏乞亟命鐫遞, 以重保釐之任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工役木布, 亦至數百餘同, 可以容入。 物力雖多, 營始大事, 豈可計較乎? 鎭遠曰, 臣亦曾聞尹趾完之言矣。 其時嶺南儲置米, 其數頗優。 若以此米三萬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何可獨任大事乎? 當與留守相議爲之, 而留守則在於江都, 臣則在於京中, 彼此物情, 未能詳知。 廟堂諸臣中, 擇一二幹事者, 與之各陳所見, 商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趙泰老所啓, 臣以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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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擧孝廟同德之臣, 看作重罪, 而反以宣擧之敢援聖祖, 欲歸同浴之地, 謂之無失者, 獨何故也? 夫杜擧之說, 雖欲借喩曲解, 其事實之不倫, 何哉, 凱風寒泉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上御時敏堂, 引見。 入侍。 行兵曹判書金錫胄進曰, 昨日以榻前所達五部點考事, 言于大臣及柳赫然矣, 大臣曰, 今日欲爲請對, 有所達事矣, 宋尙敏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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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言于備局, 速爲擧行, 可也。 宗道曰, 臣嘗往藥房, 聞大臣之言, 則以鄭維岳之言爲是, 而第此等甄拔, 非可猝然爲之, 當從容訪問而後, 乃可擧行云矣,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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